‘한말글사랑겨레모임’이 태어난 이유
1988년 나는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장으로서 20여 년 동안 국어운동학생회 후배들을 이끌고 함께 활동하다가 국어운동동지회로 이름을 바꾸고 시민운동모임을 하려고 했으니 국어운동대학생회 후배들이 계속 나오고 그들을 이끌어야 했기에 시민단체처럼 활동을 하더라도 이름은 그대로 동문회로 활동을 했다. 그런데 1990년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는 것을 보고 앞으로 우리 말글이 더 어렵게 되겠다는 것을 느끼고 강력한 시민단체를 만들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공병우박사님도 그런 생각을 하고 한글문화원에 있는 우리 동문회 모임 옆방에 이오덕 선생이 이끄는 글쓰기연구회 사무실을 주고 그 분과 함께 시민운동모임을 만들 것을 권했다.
▲ 왼쪽부터 공병우 박사, 이오덕 선생이 쓴 책과 이오덕 선생, 이대로(오른쪽 끝) 공병우 박사 소개로 이오덕 선생을 만나서 함께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시민운동모임을 만들려고 했었다. © 리대로
그때 나는 이오덕 선생을 처음 만났는데 한길사에서 낸 “우리글 바로쓰기”란 책을 주어서 읽어보니 내가 알지 못하는 일본말투와 일본 한자말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이 갔다. 공병우 박사도 그 책을 읽고 공감하고 국어운동 젊은이들을 이끄는 내가 초등학교 선생들과 함께 바른 글쓰기 운동을 하는 이오덕 선생과 함께 손잡고 우리 말글 지키고 살리는 시민운동 모임을 만들어 한글기계화운도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신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는 최노석 후배에게 회장을 넘기고 이오덕 선생과 시민운동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한글학회 중심으로 활동하는 분들과 젊은 한글운동가들을 모으고 이오덕 선생은 글쓰기연구회에서 함께 활동하는 학교 선생들을 모으니 발기인 100여 명이 되었다.
그런데 모임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말사랑겨레모임’으로 하자고 하는데 한글 쪽 젊은이들은 ‘한말글사랑겨레모임’으로 하자고 해서 발기인 모임에서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이 결정이 되었다. 그러니 이오덕 선생은 그 모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말글’이라는 말이 낯설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글 쪽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겨서 우리말을 ‘국어’, 우리 글자를 ‘국문’이라고 할 수 없어서 떳떳한 우리 말글 이름을 새로 짓고 우리 말글을 지키고 살리자고, 우리말은 ‘한말’, 우리 글자는 ‘한글’로 지어 불렀던 정신을 이참에 살리자고 “한말과 한글”이란 두 이름을 합한 말로 ‘한말글’이란 말을 만들어 쓰자는 것이었다.
나는 양쪽 모두 공감이 갔다. 그렇지만 이오덕 선생과 함께 시민운동을 하려고 했기에 한글 쪽에 이오덕 선생 뜻을 따르자고 설득하고 이오덕 선생에게는 모임 대표를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한번 마음이 바뀐 이오덕 선생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 동안 흐르니 공병우 박사는 “한글. 나라사랑모임”이라는 이름으로 혼자 활동을 시작했다. 공병우 박사는 그 이름이 좋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오덕 선생도 한글 쪽 사람들도 따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한말글사랑겨레모임’으로 출범을 하고 나와 밝한샘 선생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정부가 국립국어원을 만들고 한글을 못살게 구는데다가 언론이 거들고 나서니 우리 말글이 위기여서 머뭇거릴 수 없었다.
▲ 공병우 박사가 “한글나라사랑모임”을 만들고 한글 이름표 갖기와 한글기계화운동을 한 자료. © 리대로
그런데 이오덕 선생은 따로 과천에서 ‘우리말살리기모임’으로 활동을 하면서 두 번째 낸 ‘우리글 바로쓰기’책에 “이대로가 시민운동 모임을 만들자고 해서 함께 하려고 했으나 뜻이 맞지 않아서 갈라섰다.”라고 적어서 마치 내가 이오덕 선생을 밀어낸 것처럼 글을 쓰는 바람에 독자들이 오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이오덕 선생을 모시고 함께 활동을 하려고 무척 애쓴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임을 만드는 뜻도 이오덕 선생이 쓰고 임시 이름이지만 ‘우리말사랑겨레모임’으로 정했는데 그 때 모임 만들기를 내가 주도했기에 그렇게 썼던 겄으로 보인다. 아무튼 어쩔 수 없이 이오덕 선생과 나는 따로 모임을 하게 되었지만 그때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셋이 민자당이란 새 정당을 만들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뒤 한글을 못살게 구는 것을 막는 싸움판 선봉에서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은 그 몫을 톡톡히 하게 된다.
[1991년 처음 모임을 만들 때 임시 이름과 취지문]
우리말사랑겨레모임(임시 이름) 일으키는 뜻
- 겨레말이 살아야 겨레가 삽니다 -
우리말은 우리 겨레의 피요 생명입니다. 우리 겨레가 반만년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이 땅을 지켜온 것도 겨레의 얼을 이어준 배달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배달말은 오랫동안 남의 말글에 시달림을 받아 차츰 그 말이 비뚤어지고 줄어들고, 그 본디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배달말은 한자말에 멍들고 일본말에 짓밟히고 서양말에 쫓겨나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에 와서 온 나라가 도시 산업 사회로 바뀜에 따라 우리말의 속살을 이어 오던 터전인 농촌이 사라지면서 우리말은 밑뿌리가 아주 뽑혀 버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우리말은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할 교과서와 사전과 문학작품에서조차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방송과 신문과 잡지와 온갖 상품 광고들은 우리말을 엉망으로 다루는 것이 예사로 되었습니다.
말은 삶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삶이 바로잡혀야 말도 바로잡힙니다. 그러나 삶이 오랫동안 비뚤어져 있으면 말이 깊이 병들어 버리고, 그 병든 말과 글이 거꾸로 삶을 규정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말은 삶에서 나올 뿐 아니라 삶을 열어가는 수단이요 바탕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삶을 바로잡는 일 못지않게 말을 바로잡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 겨레를 살리는 일입니다. 배달말을 살리지 않고 배달겨레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말을 살리지 않고는 어떤 교육도 문학도 예술도 종교도 사상도 우리 것이 될 수 없고, 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봅니다. 더구나 우리 겨레가 대륙과 섬나라로 흩어지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온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은, 그 어떤 일보다도 겨레말을 바로 잡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 얼을 찾아 가지는, 말 살리는 일이 곧 민주주의와 통일을 앞당기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우리말을 살리는 일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
1. 우리말이 어떤 말인가, 우리말이 아니거나 우리말이 될 수 없는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를 알아서, 우리 스스로 바르고 깨끗한 말을 쓴다.
2.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글과 말을 퍼뜨리는 모든 대중 전달 수단을 바로잡는 일을 한다.
3. 우리말을 바로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고 모으고 연구하여 널리 퍼뜨린다.
4. 모든 일터와 모임에서 우리말을 바로 쓰는 운동을 펴 나가도록 한다.
5.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겨레말을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한다.
6. 가정에서 우리말을 바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한다.
7. 말과 글에 관한 법령과 정책을 바로잡도록 한다.
8. 위와 같은 일을 하면서 우리말이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가를 모든 사람들이 깨닫도록 한다.
1991년 7월 19일
임시 사무소: 서울 종로구 와룡동 95번지 한글문화원 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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