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조선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 박사

한글빛 2008. 8. 6. 22:40
조선인보다 한글 더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 박사
[인물] 59주기 추모식, “대마도는 본시 조선의 부속” 등 한국사랑 남겨
 
이대로
1886년 대한 제국 때 육원공원의 교사로 이 땅에 와서 쓰러져가는 이 나라를 지키고 살리려고 애쓴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 박사의 59주기 추모식이 2008년 8월 5일 마포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묘지 안 백주년기념교회에서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주최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 김형오 국회의장, 김양 보훈처장, 김영일 광복회장과 200여 명의 내외 귀빈이 참석해 헐버트 박사의 독립정신과 한글사랑 업적을 되새겼다.

한국인 이름이 흘법(訖法) 또는 할보(轄甫)인 미국인 헐버트 박사는 기독교 선교사로 왔지만 한성사범학교 교장을 지냈고 ‘사민필지’란 최초 한글지리교과서를 만든 교육자요, ‘대한제국멸방사’란 책을 쓴 역사학자였고, 이준 열사 등과 함께 헤이그 만국회의 고종황제 밀사로 가서 일본의 조선침략을 성토한 독립운동가로서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미국인이다.
 
▲ 열린 헐버트 박사 59주기 추모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김형오 국회의장     © 이대로
이날 추모식 식사를 한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 오늘날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어렵다. 100년 전 일본이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할 때에 우리 조선이 이웃나라를 잘못 만난 것 같다며, 지식과 도덕의 능력을 키워 일본을 이기자던 박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특히, 박사님은 3년 만에 우리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고종황제에게 ‘한글 보급청’을 만들라고 건의도 하고 한글교과서도 만들었다. 또 조선 양반들이 한글을 외면하고 한자만을 쓰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한글 연구와 보급에 남달리 힘쓴 분이었다.
 
▲ ‘사민필지’ 머릿글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보고서 영문 원본 일부.     © 이대로
이번 59주기 추모식에 박사님이 1903년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보내는 스미스소니언 협회 연례보고서에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기고한 글을 최초로 공개한다. 앞으로 박사님의 한글 연구와 한글사랑운동에 대한 업적을 정리 평가하려고 한다.”면서 조선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 박사가 “1901년에 지은 ‘한국사’에서 부산 건너편에 있는 대마도가 본시 한국 부속이였으며 땅이 척박하여 매년 조선의 도움을 받았다.”라고 주장한 것이 오늘날 한일문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 지난해 국회 대표 한 사람으로 헤이그 밀사 추모식에 가서 헐버트 박사의 구국활동과 평화정신을 자세히 알고 존경과 감동을 크게 받았다. 우리보다 우리 민족을 더 사랑하시고, 우리 자주독립을 위해 현신하신 헐버트 박사님은 독립투쟁의 원혼이자 건국의 아버지셨다. 오늘날 나라가 매우 힘든데 박사님의 높고 귀한 뜻을 되살리고 이어받아서 바르고 참된 나라를 만들 것을 다짐한다.”면서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겨레를 이끌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서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활동에 도움을 많이 준 전택부 전 기독청년회 명예회장과 서울지방청보훈청 허정환님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는데 평소 헐버트 박사를 존경하던 전택부 회장은 글쓴이에게 “헐버트 박사는 외국인이면서도 우리 조선인보다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게 하려고 더 열심히 일하다가 일본인에게 추방도 당했고, 한글의 우수성을 깨닫고 한글연구와 보급에 남다른 노력을 한 분이다. 최초로 만든 한글로 교과서 사민필지란 교과서는 배재학당과 한성사범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교재로 썼으며, 그는 서재필, 주시경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드는 일도 함께 했다. 이 사실을 한글단체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에 한글의 우수성을 미국 정부에 알려주는 보고서를 찾아 최초로 공개한다고 한다. 헐버트 박사의 한글사랑 정신을 세상에 알려달라. ”라고 전화를 해주셨다.

▲ 마포 양화진 외국인 표지 안에 있는 헐버트 박사 무덤     © 이대로


오늘날 광우병 파동과 일본 독도 야욕에다가 정부와 국민이 불신하고 갈등이 심해 나라가 매우 어지럽다. 거기다가 국제 기름값도 올라서 살기도 힘들다. 100년 전 일제가 이 땅을 강제로 점령하려고 할 때 그 야욕을 막으려고 애쓴 헐버트 박사의 활동과 정신을 되새겨 나라를 지키고 빛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깨닫고, 한글로 국민 지식수준을 높여서 일본에 먹히지 않게 하려고 애쓴 일은 오늘 우리가 가슴 속 깊게 간직하고 실천할 일이다.

외국인인 헐버트 박사가 우리보다 최초로 한글 교과서를 만들고, 105년 전에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글의 독창성, 과학성, 간편성 들을 설명하면서 한글이 대중언어 매체로서 영어보다 더 우수하다.“고 알려 준 사실을 알고 영어에 목매고 있는 우리 현실이 떠올라서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다. 한편, 그분이 한글을 연구하고 알리는 데 힘쓴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고 앞으로 그 뜻을 받들어 이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영어를 하늘처럼 받드는 대통령과 장관과 교육감과 도지사들에서부터 영어학원장과 택시운전사와 아줌마들은 이 사실에 눈길도 주지 않고 콧방귀를 뀔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요즘 어느 학원장과 택시 운전사와 아줌마가 영어 몰입교육은 얼빠진 일이라는 내 말에 콧방귀를 뀌며 나를 거세게 비판하는 일이 있어서이다. ‘사민필지’ 머릿글은 참으로 독립신문 창간사와 함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그 시대 명문이고 한글 역사 자료다.

 

사민필지(최초 한글 지리교과서) 서문 (옛 글자를 현대 글로 번역)

 

천하 형세가 옛날과 지금이 크게 같지 아니하여 전에는 각국이 각각 본지방을 지키고 본국 풍속만 따르더니 지금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천하만국이 언약을 서로 믿고 사람과 물건과 풍속이 서로 통하기를 마치 한집안과 같으니 이는 지금 천하 형세의 고치지 못할 일이라.

 

이 고치지 못할 일이 있는 즉 각국이 전과 같이 본국 글자와 사적만 공부함으로는 천하각국 풍습을 어찌알며 알지 못하면 서로 교접하는 사이에 마땅치 못하고 인정을 통함에 거리낌이 있을 것이오.  거리낌이 있으면 정의가 서로 두텁지 못할지니 그런 즉 불가불 이전에 공부하던 학업 외에 각국 이름, 지방, 폭원, 산천, 산야, 국경, 국세, 재화, 군사, 풍속, 학업과 도학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고로 대저 각국은 남녀를 막론하고 칠, 팔세가 되면 천하 각국 지도와 풍속을 가르친 후에 다른 공부를 시작하니 천하의 산천, 수륙과 각국 풍속,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조선도 불가불 이와 갖게한 연후에야 외국 교접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또 생각건대 중국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언문은 본국 글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언문이 중국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수이 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오. 이러므로 한 외국인이 조선말과 언문법에 익숙치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서 천하각국 지도와 목견한 풍기를 대강 기록한다.  땅덩이와 풍우박뢰의 어떠함을 먼저 차례로 각국을 말씀하니 자세히 보시면 각국 일을 대충은 알 것이요.  또 외국교접에 적이 긴요하게 될 듯하니 말씀의 잘못됨과 언문의 서투른 것은 용서하시고 이야기만 보시기를 그윽히 바라옵나이다.

 

 조선 육영공원 교사 헐버트 씀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2008/08/06 [15:02] ⓒ ja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