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맹과니 국회의원들
김수업(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
21세기를 10년 넘게 들어선 2011년에, 나라의 능력 수준이 세계 10위 안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김세연․조순형․김성곤 같은 이들이 정부가 초등과 중등학교의 한자교육에 더욱 힘을 쓰도록 ‘한자교육기본법’ 초안을 만들어 공청회를 연다고 한다.
우선 이런 청맹과니(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돈으로 금뱃지를 가슴에 달고 떵떵거리며 산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려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가 해야 할 다급한 일이 태산보다 높이 쌓인 것을 철든 국민은 모두 보고 있는데, 이들은 그런 일을 하나도 보지 못한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도 지금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가 만든 구렁에 깊이 빠져 있다. 굶주려 죽어나가는 어린이만 해마다 수만을 헤아리는 북녘을 무턱대고 몰아붙여 중국에게 안겨주고 말았으며, 건드리지 말라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겨레의 목숨 줄인 4대강을 망가뜨려 오늘의 나라 살림뿐 아니라 길이 후손의 삶까지 재앙을 안겨 놓았으며, 창의와 개성은 아랑곳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시험 점수만 다그쳐 꽃봉오리보다 곱고 값진 아이들과 학교 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세계의 선두에 나서서 나라 살림의 기둥으로 자라던 전자정보통신 산업을 헌 신짝처럼 팽개쳐 미국만 살려주고 있다. 이밖에도 열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는 나랏일들이 꼬이고 뒤틀려 있는데, 이런 때에 국회의원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이 한자교육 따위를 들먹인단 말인가!
그들이 이런 짓을 하는 까닭을 들어보면 그들의 천박한 언어 교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까닭이 셋이라는데 끈기를 내어서 하나씩 잠간 읽어보자.
①광복 이래 초등 및 중등학교 국어교육에서 한자교육을 소홀히 한 결과, 우리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에 대한 문해불능자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서, 우리말을 올바로 사용하는 데에 많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아이구야, 이런 글을 우리말이라고 써놓은 사람들이 2011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니!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라고 주제넘게 나서기에 앞서 제 스스로 우리말 글쓰기부터 공부하는 일이 다급하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은 저들이 말한 그대로 한자를 배우지 않아서 이런 따위 한자말 투성이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도 한류 문화를 일으켜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내키지 않지만 이런 국회의원들이 읽어보라고 글월의 틀은 건드리지 않은 채로 낱말만 우리말로 조금 바꾸어 보이겠다.
㉮나라를 되찾은 뒤로 초등과 중등학교 우리말 가르치기에서 한자 가르치기를 힘쓰지 않아, 우리말의 70%가 넘는 한자말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서, 우리말을 올바로 쓰는 데에 헷갈림이 많다.
이렇게 우리말로 바꾸어 놓아도 본디 글에 졸가리가 없던 것이라 말 그대로 헷갈림이 없지 않다. 그러니까 그 헷갈림의 까닭은 읽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쓰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말을 제대로 배워서 쉽고 또렷한 글을 쓰면 무슨 헷갈림이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우리말은 짓밟아 돌보지도 않고 지난날 쓰던 한자말을 함부로 끌어다 얼기설기 얽어서 글이라고 써놓는 이들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이 헷갈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②이에 품격 높은 우리말의 사용과 學問 발전을 통한 민족문화의 창달에 막대한 장애가 예상되므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고 제도적인 한자교육에 대한 요구가 크게 일어나고 있다.
아이구나! 여기는 한글로 ‘학문’이라고 쓰면 알아듣지 못할까봐 중국 글자까지 끌어와서 ‘學問’이라고 써놓았네. 그래 ‘학문’이라고 쓰면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다가 ‘學問’이라고 쓰니까 ‘배울 학’ ‘물을 문’을 알아서 비로소 ‘학문’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나? 그래서 ‘학문’이란 것이 ‘배우고 묻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 학문은 이천오백 년 이전 공자 맹자가 살던 시절에나 통하던 것이다. 21세기 오늘에 와서도 한자를 알면 한자말의 뜻을 잘 알 수 있다는 소리는 참으로 청맹과니들에게나 통할 소리다. 게다가 본디 낱말의 뜻이란 한 덩이 말로서 드러나는 것이지 소리 조각이나 낱낱의 글자 뜻을 모아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라는 낱말의 뜻은 ‘하’의 뜻과 ‘늘’의 뜻을 모아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래저래 이 문장 또한 말이 안 되는 글이지만 어름어름한 한자말들을 쉽고 또렷한 우리말로 조금 바꾸어 보이겠다.
㉯이에 아름다운 우리말의 쓰임새와 학문을 일으켜 겨레의 문화를 떨치는 일에 엄청난 걸림돌이 되겠으므로 여느 국민들 사이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고 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잘 하라는 말들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지 못하고, 학문을 일으키지 못하고, 겨레 문화를 떨치지 못한다고? 그래서 여느 국민들 사이에 학교에서 한자를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목소리가 높다고? 참으로 어이없는 거짓말이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이끄는 요즘 세상처럼 우리 겨레의 문화가 온 세계에 높이 떨친 시절이 한자와 한문으로 살던 지난날 어느 적에 있었단 말인가? 한자를 배우지 않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올림픽을 비롯한 갖가지 운동 경기에서 보이는 체육 문화, 전자제품과 자동차와 선박과 토목과 건축 같은 산업기술 문화가 어떠한가? 이른바 한류는 앞에서도 말한 것이지만, 전통 연희 놀이패들이 나라 바깥 온 세상으로 다니며 겨레 문화를 뽐내고, 우리의 영화가 유럽의 여러 영화제에서 해마다 커다란 상들을 타고, 게임과 드라마와 인터넷에 담긴 우리의 생활 문화가 온 세계 사람들의 안방으로 들어가 손뼉을 받고 있지 않는가? 이처럼 빛나는 문화를 떨치던 시절이 한자를 부지런히 가르치고 배우던 지난날 어느 세월에 있었더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면서 일어서는 오늘날 우리 문화의 열쇠가 무엇인지나 아는가? 너나없이 누구나 지니고 태어난 바를 마음껏 담아낼 수 있도록 좋은 그릇이 되어주는 한글이 바로 그 열쇠다. 쉽고 또렷한 한글로 이루어내는 이런 만인 평등의 문화는 중국의 한자와 한문에 짓눌려 중화의 아류에 떨어져 살아온 지난 일천오백 년 동안에는 어느 때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엇을 믿고 이제 와서 한자를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를 한단 말인가?
③이러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고 우리말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초등 및 중등학교의 한자교육에 대한 중앙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 효율적인 한자교육에 관한 교육과정의 개발과 평가 등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데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바람에 맞추고 우리말의 문제들을 풀어내도록 초등과 중등학교에서 한자 가르치는 일에 중앙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맡을 책임과 의무를 밝히고, 한자 가르치기를 잘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평가를 제대로 하도록 빈틈없이 밀고나갈 법과 제도의 틀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런 소리는 참으로 소름이 끼친다. 하늘 아래 어디 가서도 쓸 곳이 없는 한자를 가르치자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다 책임을 지우고 의무를 맡기는 법을 만들겠다니! 이들이 지난날 일천 몇 백 년 동안 한자와 한문이 우리 겨레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얼마나 내리눌러 썩히게 만들었는지 꿈에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제정신을 차리고 사는 국회의원이라면 한자교육을 걱정하기에 앞서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걱정해야 마땅하다. 문화 국가의 국회의원이라면 한자교육기본법을 만들기에 앞서 마땅히 우리말교육기본법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겨레 생기고 처음으로 2005년에 우리나라 국회가 국어기본법이라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에서는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걱정하는 한 마디 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자교육기본법? 어디 만들겠으면 만들어 보라고 하지. 한자를 팔아서 떼돈을 버는 장사꾼들이야 춤을 출 것이다. 그러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법률 하나가 물밀 듯이 다가오며 하루가 다르게 용솟음치는 새로운 세상의 힘을 막아낼 수는 없다. 어른의 아버지인 우리 아이들이 아까운 시간과 정신을 써버리며 천하에 쓸모없고 어려운 한자를 배우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가운데 이들 세 사람밖에 또 다른 청맹과니가 몇이나 더 있어서 이런 법을 만들자고 맞장구를 치는지 눈을 부릅뜨고 역사와 함께 지켜보고 싶다. (201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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