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국회가 의원동산에 외국 손님을 맞이할 한옥을 지으면서 그 집 문패를 수천 년 전 중국 공맹의 글에서 글자를 따다가 ‘允中齋’ 라고 문패를 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국회의장과 의원들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국회를 중국 국회로 착각하게 만들려는가?”라는 글과 함께 ‘한가람’이나 ‘사랑채’, ‘한누리’ 같은 이름을 지어주면서 우리 말글로 문패를 달라고 국회의장에게 건의한 일이 있다. 그 건의를 들어주어 올해에 그 집에 ‘사랑재’라는 한글 문패를 달았다. 우리가 지어준 이름은 아니지만 한글로 문패를 단 것은 잘한 일이기에 고마워서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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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택 한글학회 회장이 ‘사랑재’ 현판을 보면서 ‘재’에다가 점 하나만 찍어서 ‘사랑채’라고 하면 참 좋은 이름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
지난해 봄에 국회를 출입하는 한 정부기관원이 내게 전화로 “국회를 방문하는 외빈 접견장소로 활용될 한옥 건물의 이름이 ‘윤중재’로 결정됐으며 12월 중순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그 문패를 한자로 단다는 데 얼빠진 일입니다. 이 대표께서 막아주세요.”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바로 국회(사무총장 박계동) 담당자에게 ‘윤중재’란 말뜻을 물었더니 “일본말 ‘輪中’과 발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른 ‘允中(윤중)’이다. 允中(윤중)이란 말은 論語(논어)에 나온 구절 允執厥中(윤집궐중)에서 따온 말이다. 본디 이렇게 따올 경우 執中(집중)으로 따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允(윤)자가 진실함, 신실함, 성실함의 의미를 지니기에 允中(윤중)으로 따오더라도 뜻이 매우 아름다워 允中齋라고 지었다.”라고 답변을 했다.
그리고 국회 박계동 전 사무총장은 그 한옥 기공식 때 “ 우리나라의 전통 주거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우수성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이 한옥 ‘允中齋’에서 매년 150회 이상 국회를 방문하는 세계 각국 외빈들 접견은 물론 의원 동산 방문객들의 쉼터로 활용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단다. 사무처 담당자는 일본 말 ‘輪中’은 아니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21세기 대한민국 한글시대에 2500년 전 중국인이 쓴 한문을 본 따서 한글나라인 대한민국 국회 건물이름을 짓는 마음보를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국회사무처 담당자에게 “최근에 서울시 퇴계로에 있는 ‘한국의 집’이 수십 년 동안 달았던 ‘海隣館(해린관)’이란 한문 현판을 ‘한국의집’이란 한글로 바꾸었다.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곳으로서 해마다 17만 명의 방문객 중 외국인의 비중이 약 60%인데 간판이 한문이라서 중국과 혼돈된다고 문제를 제기해서 우리 말글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가 한자 문패를 다는 일은 얼빠진 짓이고 한글을 짓밟는 일이다. 우리 말글로 바꾸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아름답고 쉬운 우리 말글로 다시 지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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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회 건물에 우리 글자인 한글로 문패를 단 모습이 잘 어울리고 참으로 아름답다. |
그래서 한말글문화협회(대표 이대로)는 여러 한글단체 대표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한 달 동안 좋은 우리말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해서 들어온 수십 개 이름 가운데 한글 이름짓기 전문가와 의논해서 “가람, 한사랑채, 가온채, 참마중, 사랑채, 한겨레집, 사랑마루” 등 7개를 골라 4월 30일에 국회에 보내주었다. 그런데 6월이 다 지나가도 아무 소식이 없어 국회의장과 국회 사무처장에게 “새로 짓는 국회의 손님맞이 한옥의 이름을 우리 말글로 지어 달라.”는 건의문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국회의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와달라고 말했었다. 그 뒤 올해 아무 말 없이 지금 한글현판을 달았다. 그래도 고맙고 반갑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와있다고 한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앞서가는 나라다. 앞서가는 나라가 되면 남의 흉내나 내고 뒤를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다. 자주 정신을 가지고 제 길을 만들고 갈 줄 알아야 한다. 그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얼이고 정신이다. 제 말글부터 제대로 지키고 빛내야 앞서가는 나라가 된다. 똑 같은 아파트와 국산품에도 외국 말글로이름을 바꾸면 더 비싸게 팔리고 사는 그 정신 상태로 선진국은 안 된다. 이제라도 지난날에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섬기고 받든 잘못을 반성하고 한글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김찬 문화재청장과 최광식 문광부장관도 권오을 국회사무처장과 박희태 국회의장처럼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門化光’이란 광화문의 한자 현판을 ‘광화문’이라고 한글로 바꿔달아서 우리 자존심과 자긍심을 높여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래서 대한민국다운 모습을 세계인에게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 일은 겨레와 시대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