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한자 멍에까지 씌울 텐가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우리 아이들은 영어 조기교육 등 너무 많은 배움에 지쳐 있다. 시험 점수에 기를 펴지 못하고 온실 속의 꽃처럼 허약하게 자란다. 그런데 그 가르치는 것이 제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나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의 무분별한 욕심과 잘못된 교육정책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앞날뿐만 아니라 나라의 앞날이 몹시 걱정된다.
그런데 요즘 서울시교육청은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로 초등학교 책에 한자말이 많은데 그걸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과 한자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것을 들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책에 나오는 한자말은 거의 일제 식민지 때 배우고 길들여진 일본식 한자말이다. 광복 뒤에 그 한자말을 버리고 우리말을 도로 찾아 쓰자고 했으나 일본식 한자 혼용을 하자는 이들이 반대했다. 그리고 그들은 교과서에 있는 ‘세모꼴’이나 ‘네모꼴’이란 토박이말을 ‘삼각형’과 ‘사각형’이란 한자말로 바꿨다. 이렇게 한자말을 늘려 놓고는 이제 그 한자말을 알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
또 이들은 일본처럼 한자능력검정시험제도를 교육부로부터 허가받아 대기업 입사시험과 일류대학 입시에 유리하다면서 한자공부를 부채질했다. 그래서 한 해에 응시료와 교재 판매로 100억여원을 번다는데 초등학생들이 그 시험을 가장 많이 본다고 한다. 시험 문제는 초등학교 책에 있는 한자말이며 이를 한자시험 관련 단체들이 가르치고 관련 교재를 만들어 팔고 있다. 그런데 그 한자말 공부를 이제부터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고 세금으로 교재를 개발해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청이 사교육을 도와주겠다는 말이다.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중국이나 일본 학생들은 고등학교 교육과정까지 마쳐야 그들 일상생활에 필요한 한자를 다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가기 전에 글자를 모두 안다. 그들에 견주면 10여 년이란 시간과 힘을 벌고 있으나 그 시간과 힘을 한글로 지식과 정보를 얻고 기술을 익혀 창조력을 키우는 데 쓰지 못하고 한자와 영어를 배우는 데 다 허비한다. 복 떠는 일이고 바보스러운 일이다.
한자교육은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1800자를 배우는 것과 초등학교 자율학습으로 충분하다. 한·중·일 공용한자 800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하루빨리 한문 전문가를 키워서 옛 한문책을 국역하고, 일본식 한자말을 씻어내고 우리 토박이말을 되살려내야 한다. 옛날보다 한자를 덜 쓰는데도 오히려 더 가르치겠다는 것은 딴 목적이 있거나 말글 본질을 모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弟子(제자)’란 말의 글자 뜻은 ‘아우 아들’이지만 그 말뜻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말뜻은 그 말소리와 문맥에서 나오는 것이지 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글자가 보이지 않는 라디오 방송을 알아듣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자교육 강화는 우리 말글을 못살게 구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을 방과후에라도 동무들과 뛰놀며 튼튼한 몸과 정신력을 키우게 하여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꾼으로 자라게 하자. 아이들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자. 그것이 아이들을 살리고 나라 힘을 키우는 일이다.
리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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