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빨래틀 - 남점성

한글빛 2015. 3. 25. 10:22

    빨래틀과 세탁기 

                                      창원 화원 남점성 

끼니마다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차려내는 일을 거를 수 없는 아낙네 일이 듯이, 식구들이 벗어놓은 옷을 빨아두는 일 또한 남정네는 손을 쓰지 아니한다. 몸에서 배어나는 것이 살갗에 끼어 때가 되고 옷이 머금어서 빨래를 기다린다. 빨래를 자주하고 덜하고는 사는 형편에 따라 다른데, 빨래를 미루기는 하여도 피할 수은 없는 일이다. 

집에 빨래틀을 들여놓고 얼마 동안 쓰다가 탈이 났다. 고치는 쟁이를 불러 손을 보았다. 만들어낸 때가 1990년이란다. 고치고 나서 좀 쓰다가 또 탈이 났다. 이러구러 네 차례나 고쳤는데도 물 짜는 노릇밖에 일을 못하다가 올 가을 들어서는 아주 돌아가지를 아니한다. 제대로 써보기는 겨우 몇 해....

내 집에는 대물림으로 쓰는 '싱거' 바느질틀이 있다. 올해 일흔 살이 된다. 아직 탈난 일이 없다. 아내가 돋보기를 콧등에 끼고 바느질하는 것을 보면서 버리지만 아니한다면 앞으로도 몇 대를 물리것다. 이 바느질틀을 보다가 요새 만들어 내는 물건들이 겨우 몇 해를 쓸 수 있는 것들이니 오래 못 쓰도록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는갑다. 자주 고치도록 하는 것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셈일까. 

아내가 빨래틀을 다시 사들이자 하여도 못 들은 척한다. 빨래틀로 빨래하는 일을 보면 아낙네 일손을 아주 덜어주는 것이 아니다. 빨래틀에 옷을 집어넣기 전에 옷에 묻은 찌든 때를 손빨래로 먼저 해가지고 집어넣는다. 손빨래 없이 바로 빨래틀에 집어넣고 빨래한 것을 널어놓았는데 보니까 하얗게 되어 있어야 할 데가 누르무레하다. 빨래틀이 손빨래보다 나은가? 

빨래틀이 탈이 났을 적에 고치는 데에다가 전화를 하였다. "우리집에 '빨래틀'이 탈이 났으니 고쳐주시오." 
"예? 뭐 말입니까?" 

"'빨래틀' 말이오, '빨래틀'. 더러워진 옷을 빠는 '빨래틀'말이오. 대한민국 ㅅㅅ 회사에서 만들어낸 '빨래틀' 말이오." 

"아! '세탁기' 말입니까?" 

고치는 쟁이가 와서 살펴보고는 조치개를 갈아 끼우고 일을 마친다. 이 사람한테는 '빨래틀'이라고 말을 시켜보고 싶었다. 처음 듣는 '빨래틀'을 한번 해보라니까 세상천지가 다 '세탁기라 하는데 될 말인가 한다. 이 자리에서는 누가 힘을 내는 쪽인가. '빨래틀'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면 돈을 안 줄 참이다. "나는 '빨래틀'을 고쳐달라고 불렀소."   "... 빨래틀." 

이름을 우리말로 지어 붙이는 바탕이 뭉개졌다. 짓밟힌 우리말, 불쌍한 몰골이다. 우리 삶에서 우러나온 빨래! 옷이나 피륙 따위를 물에 빠는 '빨다'가 '빨래'라는 일 이름이 되어 빨래한다, 빨래곤지미, 빨래꾼, 빨랫방망이(빨래방추). 빨래터, 빨래약, 빨래작대기(바지랑대), 빨랫대, 빨랫돌, 빨랫대야, 빨래질, 빨래판, 빨래품, 빨랫간, 빨래장사(마전장이), 빨랫감, 빨래밀미, 빨래물, 빨랫바구니, 빨랫보, 빨랫비누, 빨랫솔, 빨랫줄, 빨랫집, 빨래집게, 빨래거리, ...애벌빨래, 마른빨래, 흙빨래, 손빨래... . 

빨래를 손으로 하다가 연모로 하게 되었으니 '틀'이 붙게 되겠는데 '틀'을 붙여 이름지은 말을 보면 바느질틀, 발틀, 손틀, 운동틀, 형틀, 간당틀, 장강틀, 돗틀, 누르는 힘틀, 받침틀, 붙임틀, 기름틀, 뜀틀, 오줌틀, 숨틀, 죔틀, 솜틀, 날틀(날을 고르는 데 쓰는 연모).,담틀, 토담틀, 사진틀, 전골틀, 신틀, 모재는 틀(각도), 편틀, 증편틀, 홑틀(단틀), 북틀, 흔적틀, 두레박틀, 장지틀, 갈이틀, 소리틀, 국수틀, 매화틀, 베틀, 장애틀, 홍두깨틀, 반자틀, 새끼틀, 씨부림틀... 틀톱, 틀국수, 틀누비, 틀바느질, 틀가락... . 

'빨래'와 '틀'에 낱말들이 어울려 붙어서 말겨레를 이룬다. 이 '빨래'와 이 '틀'을 바로 붙이면 '빨래틀'이라고 저절로 되는데, 말을 애지어내는 슬기가 우리 배달말에 푸지게 스며 있다. 그런데 이 슬기를 짓밟고 뭉개는 힘이 나왔다. 어디서 왔는가. 누르는 무리와 눌리는 무리로 갈라져서 누르는 무리가 다스리는 힘을 쥐고 눌리는 무리를 부림으로써 말씨 가닥을 내고 높낮이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한겨레 말씨로서이기보다는 다른 겨레말과 글을 타다가 우리 겨레말을 짓밟는 연모로 쓴 것이다. 백성이 두루 아는 겨레말 말고, 낯선 다른 겨레말과 글을 가지고 누르는 힘을 부린 것이다. 이리하여 숱한 우리말이 죽었고, 상말이 되고, 천한 말로 짓밟히고 있다. '빨래'와 '틀'이 눌리는 백성말이기에 '세탁기'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려 퍼져 버렸다. 

왜(닙뽕)는 우리말 '빨다'와 같은 입말을 '아라우'라 한다. 한문글자 말로 '새탁(센따꾸)'라. 여기다가 우리말 '틀'과 같은 말 '기'를 달고 '세탁기(센따꾸기)'라. 왜나라한테 나라를 잃고 왜말을 배운 조선사람이 '센따꾸'를 익히었다. 해방이 되어 나라를 찾으매 짓밟히고 잃은 우리말을 되찾음은 마땅한 일이었다. 우리말 도로 찾기와 새말 만들기가 일적에 나라 앞날을 밝게 만들어간다고 보았는데,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았다. 

왜놈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잘 살면서 우리 겨레를 괴롭힌 '조선왜놈'. 이들을 벌주어 짓밟힌 겨레가 풀치어지도록 하여야 마땅한데 그냥 지나고 말았다. 이들이 대한민국 벼슬자리에 앉아 나리 대접을 받고 나라를 다스리니, 배운 왜말이 정이 들어 그 왜말을 그대로 타다가 조선 한문 소리로 읽어서 '세탁-기'(센따꾸기)'를 '세탁-기'라 한 것이다. 왜말을 조선 한문 소리로 읽는 이따위 말들은 나는 '조선왜말'이라 이름지어 말한다. '조선왜말' 뒤에는 '조선왜놈'이 있다. 왜놈 앞잡이, 우리 겨레를 괴롭힌 '조선왜놈'말이다. 

짓밟히며 빼앗기던 농사꾼은 왜말을 모른다. 왜말로 배우는 '학교'를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글 모르는 무지렁이지마는 왜놈 종자는 만들지 않겠다는 배짱으로 먹고사는 농사가 '학교' 보내기보다 나았다. 시방 나이 예순을 지난 이들로서 학교 문 앞에 못 가본 사람들이 그래서 많다. 이들이야말로 우리말을 지킨, 겨레와 나라를 사랑한 이들이 아닌가. 우리말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낱말책을 펼쳐보면 안다. 우리말 곁에 한자(한자)를 달아놓은 낱말이 바로 우리말을 짓밟은 말들이다. '빨래'가 있는데 세탁(센따꾸-세탁)라는 왜말을 올려놓은 이른바 '사전'이라는 책이다. 이런 '사전'에는 '조선왜말'이 수두룩하다. 누가 이 짓을 하였겠는가? 그 뒤끝이 어떠하였는가. 한문글자를 받들면서 우리말글을 짓밟는 무리는 이 '조선왜말'을 한자로 써야한다고 떠든다. 1945년 8월 15일. 
35년 동안의 굴레에서 풀려나고부터 지나온 세월이 얼마인가? 60년이 가까워 온다. 우리말글이 이 사슬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음은 그 기운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마을에 보니 '빨래방'이 있다. '빨래'가 아주 죽지는 아니하였다. '빨래' 방을 차려놓고는 하는 말은 '세탁'을 한단다. '세탁'이 날뛰는 '정치판'을 본다. '돈세탁', '호적세탁'이 나와 ㄱ 판 세상에 알맞은 말이기도 하다. 말 모습은 나라 모습이다. 우리 겨레가, 한겨레됨을 일컫는 바탕은 배달얼이 배어 있는 배달말이다. 누가 우리말을 시삐여기고 짓밟고 있는지 눈여겨 볼 일이다. 잡잡마다 '빨래틀'이 있을 것이다. 우리 '빨래틀'을 빨래틀'이라고 일컬어주는 집이 몇 집이나 있으려나.(끝) 

 

수필 문학 4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메모 : 남점성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