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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영어상호 소송에서 졌지만 재판부가 소송 취지에 공감해줘 승소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2년 12월 한글유관단체와 국어학자들이 KB(국민은행)와 KT를 상대로 “영문 상호로 개명,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무료 변론을 맡았던 공로로 지난 4일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시상하는 ‘2004년 우리말 지킴이’로 선정된 홍영호(48) 변호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말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원래 국문학도(서울대 국문과 75학번)였다가 호구지책으로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홍 변호사가 이번 소송을 맡게 된 것은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국어문화운동본부 남영신 회장과의 인연 때문. 1982년부터 군 법무관으로 일하다 92년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일본식 한자어로 도배된 법조용어를 개혁해야 겠다는 생각에 2001년 이 단체가 주관하는 문장사 시험에 응시, 합격한 이후 남 회장과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러던 중 홍 변호사는 재작년 가을 남 회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남 회장이 단골 은행인 국민은행의 영문간판 KB를 알아보지 못해 낭패를 겪었다는 것이었다.
홍 변호사는 “멀쩡한 한글 이름을 버리고 영문을 쓰는 것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 회장의 소송 제의를 받아들였다.
곧 남 회장과 홍 변호사 주도로 한글 유관단체와 학계인사까지 참여하는 소송단이 꾸려졌다.
소송단은 공공성이 강한 국민은행과 KT를 소송 대상으로 정했다.
소송의 요지는 “외국어로 사명을 변경하는 행위는 고객에게 불편과 정신적 충격을 주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대상”이며 “영어로만 제작되거나 한글상호를 지나치게 작게 표기한 이들 기업의 간판은 ‘옥외광고물을 한글로 표기하고 영문을 쓸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한글로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한 옥외광고물관리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2년에 가까운 법정공방 끝에 지난 8월11일 서울중앙지법은 “옥외광고물 관리법 시행령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국가나 지자체가 시정할 문제여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우리 민족의 한글에 대한 자긍심은 사회공동체 전체의 자산이자 사회적 법익”이라며 “한글 침해에 대한 대응은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을 보호할 의무를 진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소송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홍 변호사는 “우리말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기업이 존경 받는 풍토가 절실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가꾸기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지난 2002년 12월 한글유관단체와 국어학자들이 KB(국민은행)와 KT를 상대로 “영문 상호로 개명,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무료 변론을 맡았던 공로로 지난 4일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시상하는 ‘2004년 우리말 지킴이’로 선정된 홍영호(48) 변호사는 “사람들에게 우리 말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원래 국문학도(서울대 국문과 75학번)였다가 호구지책으로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홍 변호사가 이번 소송을 맡게 된 것은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국어문화운동본부 남영신 회장과의 인연 때문. 1982년부터 군 법무관으로 일하다 92년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일본식 한자어로 도배된 법조용어를 개혁해야 겠다는 생각에 2001년 이 단체가 주관하는 문장사 시험에 응시, 합격한 이후 남 회장과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러던 중 홍 변호사는 재작년 가을 남 회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남 회장이 단골 은행인 국민은행의 영문간판 KB를 알아보지 못해 낭패를 겪었다는 것이었다.
홍 변호사는 “멀쩡한 한글 이름을 버리고 영문을 쓰는 것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 회장의 소송 제의를 받아들였다.
곧 남 회장과 홍 변호사 주도로 한글 유관단체와 학계인사까지 참여하는 소송단이 꾸려졌다.
소송단은 공공성이 강한 국민은행과 KT를 소송 대상으로 정했다.
소송의 요지는 “외국어로 사명을 변경하는 행위는 고객에게 불편과 정신적 충격을 주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대상”이며 “영어로만 제작되거나 한글상호를 지나치게 작게 표기한 이들 기업의 간판은 ‘옥외광고물을 한글로 표기하고 영문을 쓸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한글로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한 옥외광고물관리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2년에 가까운 법정공방 끝에 지난 8월11일 서울중앙지법은 “옥외광고물 관리법 시행령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국가나 지자체가 시정할 문제여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우리 민족의 한글에 대한 자긍심은 사회공동체 전체의 자산이자 사회적 법익”이라며 “한글 침해에 대한 대응은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을 보호할 의무를 진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소송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홍 변호사는 “우리말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바르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기업이 존경 받는 풍토가 절실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가꾸기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