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일찍이 110여 년 전 주시경 선생은 “그 나라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그 나라 말이 내리면 그 나라도 내린다”며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서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제국 식민지가 돼 우리말이 사라질 뻔했다. 한겨레의 말이 그 겨레와 운명을 함께한다는 것은 만주족과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주어가 죽으면서 만주족도 사라졌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수천 년 동안 흩어져 살면서도 제 말을 지켜서 다시 이스라엘 민족의 나라를 세웠다. 그만큼 그 겨레와 나라말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우리말이 독립하려는데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짓밟고 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김영삼 정부가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작된 일이다. 그때 정부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영어만 잘하면 세계 1등 국민과 나라가 되는 것처럼 하면서 영어 사교육과 영어 조기유학을 부추겼다.
자기 자식을 출세시키겠다는 이기주의와 지나친 자식 사랑이 맞물려 영어 열병은 급속도로 번져서 기러기 아빠가 나오고, 가정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영어 원어민 교사를 모셔오고 지방자치단체는 영어 마을을 만들며 엄청난 나랏돈을 쓰면서 영어 열병을 부채질했다. 그러니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자들까지 나왔다. 영어가 마치 무슨 요술방망이거나 만병통치약으로 아는 거 같았다. 그러나 다른 교육은 제대로 안 되고 제 겨레말과 얼만 더럽혀지고 있다.
모든 일은 때가 있고 때를 맞추어야 그 효과를 최대한 볼 수 있다. 어려서는 제 말글부터 잘 가르치고 배우고 건강과 인성교육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 공부도 억지로 하게 하기보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부터 갖게 하고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 그 효과가 크다. 왜 영어를 잘해야 좋은지를 알려주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일은 차례가 있고 차례를 잘 따라야 그 일이 잘 풀린다.
아무리 급해도 10층에 바로 올라갈 수 없다. 1층부터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야 한다. 먼저 몸과 마음이 튼튼한 사람이 되고, 다음에 제 겨레와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 되고, 능력과 인품이 있는 세계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사람으로 만드는 체육과 예능, 참된 국민이 되는 국어와 국사 교육을 먼저 잘하고 특기와 직업 교육을 하고 전문 교육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오로지 어려서부터 영어에 목을 맨다. 오늘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서 외국에 오고 갈 일이 많고 외국인을 만날 일도 많기에 외국어 필요성이 높아졌고 많이 알고 잘하면 좋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한 가지만 많이 먹으면 몸에 이롭기보다 해롭다.
영어 시간을 늘리려고 국어와 국사와 체육과 도덕 예술시간은 줄이거나 선택과목으로 가고 있다. 미국 국민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온 국민이 그렇게 영어만 잘하려고 돈과 시간과 힘을 다 바칠 필요가 없다.
영어 조기교육 시행은 처음부터 잘못 낀 단추였고 지나친 영어 편식 교육은 교육과 나라까지 망칠 잘못된 교육 정책이다. 10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 중․고등학교 영어 교육 방법과 환경을 개선하고, 교재와 선생의 질을 높이는 투자를 더 해야 했다. 개인 출세 이기주의와 맞물린 영어 편식 교육은 우리말과 겨레와 나라의 뿌리까지 썩게 하고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기주의에 묻힌 얼빠진 나라가 되어 일어난 일이다.
영어만 잘하면 무엇을 하나? 미국에는 거지도 영어를 잘한다. 지나친 영어 편식 교육은 우리말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겨레와 나라도 죽인다. 이렇게 50년이나 100년이 지나면 우리말과 겨레와 어찌 될 것인가? 다시 강대국의 식민지가 안 되길 바라고 빈다. 우리말이 우리 얼이고 우리 힘이다. 제발 정신을 차리고 무엇이 잘하는 일인지 깨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