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을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 회장 김정섭
한문글자는 옛날 갑골문자에서 비롯되어 은나라 때 글자로서 꼴을 갖추어 3천 년 동안 써 왔는데 1716년 청나라 때 펴낸 ‘강희자전(康熙字典)’에 49,030자가 실려 있다. 하지만 위로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끝날 무렵까지 이 많은 글자는 거의 다 ‘고전’과 ‘사전’에만 씌어 있었고 말글살이에선 대충 5천 자쯤 써 왔다. 태평양 전쟁 뒤, 글자를 보는 눈이 새로워지면서 꼭 쓸모가 있는 글자만 가려잡아(常用漢字) 쓰기로 한다. 일본 상용한자(常用漢字) 2,136자, 한국 1,800자, 중국 2,205자다. 여기서 서로 같은 글자가 800자이니 세 나라에서 쓰는 한문글자는 모두 3,741자다. 하지만 중국에선 이마저 버리고 1986년에 간체자 2,236자를 나라글자로 쓴다. 한문글자는 이제 제 할일을 마치고 물러설 때가 된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선 ‘간체자’만 쓰고 대만에선 ‘번체자’와 중국 약자‘를 쓴다. 일본에선 일본 약자와 상용한자만 쓴다. ‘掘鑿機’를 ‘掘削機’로 쓰는 것은 ‘鑿(착)’이 상용자가 아니므로 소리가 같은 ‘削(삭)’을 대신 쓴 것이다. 이를 ‘동음대용자(同音代用字)’라 한다. ‘(屍)體’와 ‘(死)體’, ‘(缺)席’과 ‘(欠)席’도 이와 같다. 그런데, 한국에선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교육청’ 어느 곳 할 것 없이 상용한자만 쓰는 데는 없다. 번체자, 속자, 세 가지 약자와 일본 대용자(同音代用字), 중국 간체자까지 온갖 글자를 두루거리로 쓴다. 아직도 한문글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속내를 알고나 하는 말인지 그냥 해 보는 소린지 모를 일이다.
한문글자는 뜻글자이므로 글자만 보면 한자말 말뜻을 바로 똑똑히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문글자 한 글자에 적게는 서너 가지, 많게는 열 가지가 넘는 뜻이 담겨 있다. ‘홍(鴻)’은 ‘큰기러기, 크다, 굳세다.’는 뜻이 있고, ‘공(公)’은 ‘공변되다, 드러내다. 한 가지, 함께, 구실, 임금, 어르신, 그대, 아버지, 시아버지, 공작(公爵), 공덕(功勞), 제후(諸侯), 주공(主公),’ 따위 열네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어느 것을 고르느냐에 따라 낱말 뜻이 달라지고 또 글자 뜻과 달리 속뜻으로 풀어야 할 때도 있다. ‘홍모(鴻毛)’는 ‘큰기러기 깃털’이 아니라 ‘매우 가볍다.’는 뜻이다. 한자말은 말뜻을 글자 뜻으로 풀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고 외어서 머릿속에 쌓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한자말 ‘社會, 會社’를 글자 뜻으로 풀이하려면 웬만큼 한문글자를 배웠다는 사람조차 땅띔도 할 수 없다. ‘땅 귀신들 모임’, ‘모인 땅 귀신’?
글자가 없을 때는 말로써 살아왔다. 말소리만 듣고 모두들 뜻과 느낌을 알아차렸다. 말은 어릴 때 엄마, 아빠에게 배우고 자라면서 동무들과 놀면서 배우고 스스로 보고 듣고 만지고 먹고 맛보고 일하고 느끼며 배운다. 이렇게 배운 말이 우리말이요 겨레말이다. 엄마가 등에 업힌 아이에게 ‘비행기’라 하면 말도 할 줄 모르는 젖먹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한문글자 ‘飛行機’을 알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하는 말소리를 듣고 익혔기 때문이다.
‘한글 문장 줄줄 읽어도 정확한 뜻을 모르는 반문맹이 국민의 65%’라면서 초등학교에서부터 한문글자를 가르치자고 한다. ‘한문글자로 써서 우리말 의미를 정확히 해야’ 한다면 ‘문장’이야 그렇다 치고 말은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말을 하면서 글자를 써서 보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귀로 글자를 보고 눈으로 말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말소리를 듣고도 뜻을 모른다면 그 말은 말이 아닌 소리거나 우리말이 아니다. 이런 말은 씻어내야 한다.
말은 말로써 풀어야지 말을 글자로 풀려니 일흔 해를 싸워도 판가름이 나지 않는다. 이제 한문글자란 붙박이 생각에서 벗어나 한자말을 들온말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한문글자 문제를 풀고 우리말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뿐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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