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106호 76쪽. 2006년 봄. 말글정책과 방향]
나라 망치고 겨레말과 얼을 죽이는 영어 돌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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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리대로
요즘 한국은 영어(미국말) 돌림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어린 아이는 말할 거 없고, 그 어버이와 교육 정책 담당자까지 이 돌림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 돌림병은 가정을 무너지게 하고, 교육을 망치고, 나라와 겨레말과 얼까지 죽게 만들 엄청나게 무서운 정신병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국민이 많고, 오히려 정부는 이 병을 더 앓도록 부채질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고, 특정지역에서는 수학과 과학, 역사까지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몰입 교육’이란 걸 하겠단다. 영어를 국어로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영어를 무슨 요술방망이로 아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 병은 이 나라 지도자들인 정부와 경제단체, 학자와 정치인, 언론인들이 퍼트리고 더욱 심하게 만들고 있다. 이 병은 이제 고칠 수 없는 암세포가 되어 우리말과 나라까지 죽음을 선고하게 될지 모를 위기감이 든다. 하루 빨리 이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찾고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 망국병을 고쳐야겠다.
이 영어 돌림병은 언제 생겼고 누가 퍼트렸나?
이 돌림병은 15년 전쯤 소련이 무너지고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면서 시작됐다. 미국이 인터넷통신을 온 세계에 퍼트리면서 미국말 세력이 팽창해 생겼지만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것은 12년 전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김영삼 정부는 국제화와 세계화를 외치면서 한자와 영어 조기교육을 한다고 떠들었다. 마치 한문과 영어만 잘 알면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것처럼 국민에게 선전했다. 다행히 한자 조기교육은 한글단체가 강력하게 반대하니 시행하지 못했으나 영어 조기교육은 1997년부터 하기로 정책을 세운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국제화 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진현은 그 때 “영어는 세계 공통어로서 제2모국어와 같다.”라면서 영어가 중요하다고 지나치게 선전하면서 영어 조기교육을 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그리고 정부는 온 국민이 영어만 잘하면 세계 1등 국민이 되고 선진국이 될 것처럼 떠벌리고 경제단체가 찬성하고 조선일보와 여러 신문사가 거들었다. 한글단체와 일부 깨어있는 국민이 반대했으나 힘센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영어 교육만 강조하면서 얼빠진 세계화를 외치다가 마침내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식민지가 되었다. 거기다가 1998년 전경련 산하 단체인 자유기업원(원장 공병호)과 소설가 복거일이 영어를 아예 공용어로 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그러니 김대중 정부도 그 말에 기를 기울였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으로 나라를 망친 정부와 경제단체가 겨레말과 얼까지 죽이려고 나선 것이다. 경제 위기로 외세 입김이 세니 꼼짝 못하고 거기 끌려간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2001년 5월 15일에 민주당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정책기획단(단장 이해찬)이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자 정부는 검토하겠다고 한다. 영어 암으로 뿌리내리는 큰 계기가 된다.
한글단체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 때 오세훈 변호사가 진행하는 서울방송 100분 토론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공개토론을 했는데 찬성자로 소설가협회 정을병 회장과 시사영어사 민영빈 회장이 나오고, 한글학회 이현복 부회장과 내가 반대자로 나갔었다. 그런데 찬성자로 나온 이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자신들 돈벌이가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가는 영어가 공용어로 되면 소설책이 더 많이 팔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토익시험 한국 대리점을 딴 시사영어사 민 회장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면 그 시험을 보는 사람이 늘어 떼돈을 벌고 영어 학원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공익보다 개인 이익에서 영어 공용어를 찬성하고 있었다.
그 뒤 영어 조기교육이 시행되었고, 진짜 우리나라가 영어 토익 시험을 가장 많이 보는 나라가 되었고 영어 돌림병이 더 세차게 일어나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자들이 생기고 영어 몰입 교육 바람이 일었다. 기업은 입사 시험과 대학 입시에서 영어 토익 점수를 중요시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회사까지 생겼다. 서울대와 고려대가 영어로만 강의하겠다고 하니 다른 대학도 따라서 그러고 영어 조기유학과 연수를 가는 애들이 늘어났다. 지자체들이 수백억 원을 들여서 영어마을을 만들고, 교육부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공무원, 경제단체와 일류대학, 영어 학원과 교재 업자들이 이 돌림병을 만들고 조선일보와 언론이 이 병을 널리 퍼트리고 있다. 이 가운데 교육부가 이 돌림병을 일으키고 퍼트리는 원흉이다. 그래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는 이들을 우리말 훼방꾼으로 뽑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 영어 조기교육을 반대했던 이야기
김영삼 정부가 국제화를 외치며 한자 섬기기에 나서더니 세계화를 하겠다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하겠다고 나섰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 외국에 갈 일도 많고 외국인 많이 와서 외국말을 잘해야 할 필요성은 늘었으나 영어만 지나치게 강조했다. 하더라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준비하지 않고 시골까지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시행하겠다고 했다. 부작용에 대한 대비도 없었다. 그런 식으로 강행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고 나라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일인데 언론도 국민도 단순하게 영어를 배우고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10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하고도 영어로 말 한 마디 못한다고 했다. 그럼 그 중, 고등학교 영어 교재와 교사와 교육 방법과 환경을 개선부터 할 일이다. 그건 그대로 두고 무조건 어려서부터 가르치면 좋다고 조기 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나는 정부에 절대로 그런 식으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건의하고 반대운동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청회도 열지 않고 국민의 의견을 충분하게 묻고 듣지 않은 채 그대로 결정하려고 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재앙을 막으려고 하이텔과 천리안 들 통신과 여기 저기 신문에 글을 쓰고 토론회를 열자고 호소했다.
마침내 조선일보 교열부 전태수 기자가 “조선일보 교열부 후배 기자가 리대로 선생이 열고 싶어하는 영어 조기교육 공개토론회 경비를 도와주겠다고 하니 만나보겠느냐?”고 물었다. 전태수 기자는 1993년에 조선일보가 한자 조기교육을 주장하면서 한자복권 운동 글을 17회까지 연재할 때에 조선노보에 그 반대 글을 써서 우리와 함께 그 짓을 막은 고마운 분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영어 조기교육을 찬성하는 조선일보에 영어 조기교육을 반대하는 토론회를 지원하겠다고 해서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믿을 수 있는 전태수 기자가 “조선일보와 관련이 없고 후배 기자가 사회봉사 단체인 한얼회(회장 이종대)에서 활동을 하는데 깨끗한 돈이니 받으라.”고 해서 안양에서 한약방을 하는 이종대 한얼회 회장과 그 조선일보 교열부 기자를 만나니 그 한얼회는 평소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좋은 일을 하는 아름다운 분들의 모임이었다.
그래서 그 분들 도움을 받아 흥사단 강당을 빌려서 영어 조기교육 찬성자와 반대자를 모아 그 문제점을 짚었다. 정부도 안 하는 영어 조기교육 공청회를 한글단체가 한 것이다. 그 때 교육부에 그 토론회에 나와서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토론하자고 했는데 피하고 오지 않았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토론회 분위기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잘못된 정책이라며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서둘러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영어 조기교육으로 잃은 것과 얻은 것
영어 조기교육은 내가 내다본 대로 엄청난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였지만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엄청나게 많고 컸다. 거리엔 영어 간판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우리 나라말은 영어에 짓밟혀 죽어가게 되었다. 겨레말이 죽어가니 겨레 얼도 시들고 우리 말글살이가 어지러우니 나라까지 흔들리게 되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무리도 자꾸 늘어나고 외국 문화와 자본에 나라살림까지 어렵게 되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그 피해와 부작용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정부는 영어 조기교육을 강화하겠다니 불난 집에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뿌리는 꼴이었다.
정부와 기업과 대학은 영어가 무슨 요술방망이가 되는 것처럼 선전하니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영어에 목숨 걸고 있다. 마치 부나비가 죽는 줄도 모르고 불빛으로 대들다가 죽는 꼴이다. 정부와 언론은 그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영어 조기교육은 세상의 큰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며 영어 타령만 하고 있다. 영어 조기교육으로 일어난 가정파탄, 우리말 죽이기, 나라살림 거덜 내기 들. 부작용과 피해가 수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적어보자.
먼저 사교육부가 엄청나게 들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애들이 여기 저기 학원을 많이 다니게 되어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거기다가 영어 조기교육까지 하게 되니 그 사교육비가 많이 늘었다. 초등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고 유치원생까지 영어 공부에 매달리게 되었다. 또 중, 고등학교와 대학생까지 미국말 인증시험 교재와 학원에 다니느라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게 되었다.
해외 조기유학과 연수로 나라 돈이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나라 안에서 학원에 다니고 영어 공부하는 것으로 배가 차지 않아서 너도 나도 나라 밖으로 나갔다. 전에는 부잣집 애들만 유학을 갔지만 지금은 넉넉하지 않게 사는 이들도 영어 해외 연수를 가고 있다. 내 이웃에 택시 운전을 해서 간신히 먹고 사는 사람도 딸을 영어 연수 보내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다음에 개인 삶을 짓밟고 가정까지 파괴하고 있다. 기러기 아빠가 자살을 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부부가 떨어져 살다가 바람피우고 이혼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어떤 집은 영어 연수를 보냈는데 공부는 제대로 안 하고, 말썽꾼이 되었다고 울상이다. 이런 것은 수 없이 많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도 안 된다.
가장 큰 것은 겨레말과 얼이 죽는 것이다. 우리 국어 교육은 말할 것이 없고 국사와 체육, 미술과 음악 들 다른 교육이 영어에 밀려 제대로 안 된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한문 종살이를 했고, 왜정 때엔 제에 강조로 우리말이 사라질 번하다가 이제 다시 우리말이 살아나려고 하는 데 이제 스스로 영어 식민지가 되려고 한다.
개인 회사는 말할 것이 없고 정부기관까지 영어로 이름을 바꾸기에 바쁘다. 영어 창씨개명을 하는 이들은 SK, LG, KT, P0SCO 들들 이루 다 들 수가 없이 많다. 영어로 회사 공용어로 하는 회사가 있고, 영어로만 강의를 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영어 마을도 자꾸 늘어난다. 영어 토익 대리점을 따놓고 파리만 날리던 회사는 지난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토익 시험을 가장 많이 봐서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영어 조기교육으로 일어난 피해와 문제는 많다. 제 나라 말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쓸 줄 모르면서 영어 섬기기만 힘쓰는 정부가 한심하다.
영어 돌림병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나라와 겨레 죽는다.
며칠 전 신문에 국제기구에 파견된 우리 공무원이 영어 서류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망신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번 일 말고도 진짜 영어를 잘해야 할 외교관이나 무역업자, 학자가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낭패를 봤다는 이야기가 많다. 영어 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 전문가를 키우지 않고 온 학생과 온 국민에게 영어 강박감을 심어주는 정부가 답답하다. 일생동안 영어 한마디 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겐 다른 인생 공부와 지식 교육이 더 필요하고 좋다.
도대체 교육부장관이나 영어 선생들은 무었을 하기에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영어 교육에 수백억 원을 들여서 영어 마을을 만들고 영어 교육에 나선단 말인가? 왜 넉넉지 못한 살림에 허덕이는 사람들까지 해외 영어 연수를 가고 멀쩡한 가정을 파탄 나게 한단 말인가? 미국엔 거지도 영어를 잘한다. 온 국민이 영어만 잘하면 잘 살 수 있는가? 이 모두 누구를 위한 짓거리인가?
누구나 영어를 잘하면 나뿐 것은 아니지만 꼭 그럴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고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인도와 필리핀, 파키스탄은 우리보다 잘 살지도 않고, 온 국민이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영어를 쓰는 나라인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였기에 영어를 공용어로 하기 시작했으나 영어 때문에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 언어생활로 오히려 나라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제 제발 영어 강박감과 환상에서 벗어나자. 미국의 한 주정부가 되고 싶거나 영어 식민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영어를 잘 해야 할 사람이나 잘 하도록 영어 전문가를 키우자. 그리고 영어 조기교육에 드는 비용을 다른 교육에 쓰고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문화 꽃피우는데 쓰자. 초등 교육 목적은 참된 사람, 참된 한국 사람으로 키우는 교육이다. 지나친 영어 편중 교육은 인간 교육, 한국인 교육, 기술과 직업 교육, 다른 외국어 교육을 가로 막아 얼치기 인간 교육이 된다.
영어 조기교육은 세상의 큰 흐름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의 큰 흐름은 제 겨레 말글을 지키고 잘 이용해서 자주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겨레와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이 못된 망국병, 영어 돌림병을 고치자. 영어에 지친 애들이 어른이 되면 이 나라 꼴이 어찌될까, 그 애들이 어떻게 살아갈 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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