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과정과 의미

한글빛 2016. 7. 7. 10:51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과정과 의미

 

이대로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사무총장

 

 

1. 머리말


  세종 성왕께서 만든 한글은 세계 으뜸가는 글자로 우리 겨레의 자랑거리이며 인류가 만든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더욱이 이 한글은 세계 모든 글자 가운데 만든 사람과 만든 날짜와 만든 까닭이 뚜렷하게 밝혀진 하나뿐인 글자이다. 그런 한글을 우리 조상은 500년 동안 제대로 사랑하고 즐겨 쓰지 않아 그 빛이 나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100년 전부터 한글 훌륭하고 중요함을 깨달은 분들이 한글을 갈고 닦는 일에 힘써서 오늘날 온 겨레가 즐겨 쓸 수 있게 되었다.

 한글날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민족 지도자들이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기 위해 한글을 반포한 날을 ‘가갸날’로 정했다가 그 2년 뒤에 이름을 한글날로 바꾸고 기념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한글날을 만든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말모이(사전)를 만들다가 많은 한글 학자와 지원자들이 감옥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목숨까지 빼앗기기도 했다. 이러한 선열들 덕에 광복 뒤에 우리말과 글로 공문서를 작성하고, 교과서를 만들고 또, 교육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복 뒤엔 한글날마다 한글 사랑 나라 사랑을 생각했다.

  한글날은 나라를 잃은 일본 제국 시대 나라 독립을 다짐하고 준비한 날이었고, 광복 뒤 국민을 자주 민주 시민으로 키우고 힘센 나라를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운 민족 최대 기념일이다. 또, 한글날은 한글을 지켜 주고 빛나게 했고, 한글은 우리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었고, 나라가 빨리 발전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한글날이 중요하기에 미국 군정 때인 1946년부터 공휴일로 정해 기념했는데, 1990년 대한민국의 노태우 정권은 경제 단체가 공휴일이 많아서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 달라고 요구하니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 버렸다. 온 국민에게 겨레 사랑, 나라 사랑 정신을 심어 주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데 가장 공이 한글날을 3등 기념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글날 기념식을 마지못해 하면서 우리말과 한글을 천대하니 한글과 한국말과 한겨레 얼이 시들었다.

  한글문화 단체는 그 얼빠진 꼴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뒤 바로 국경일 승격 운동을 시작해 15년 만인 2005년 12월 8일에 ‘한글날 국경일 지정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2.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기까지 발자취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또 국경일이 된 뒤에도 일반 국민은 말할 거 없고 정부 고위 공무원이나 학자들까지도 한글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한글날이 기념일 중에서 한 단계 격이 높은 공휴일이었다가 일반 기념일로 되었는데 국경일이었다가 기념일로 된 거로 아는 분이 많았다. 어떤 국회의원은 왜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빠지게 되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한글날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고 국경일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발자취를 간추려 적는다.


• 서기 1926년 11월 4일 ‘가갸날’로 선포하다.

조선어 연구회(지금 한글 학회)와 신민회가 공동 주최해 한글 반포 8회갑(한글 반포 480돌)이 되는 날에 서울 식도원에 400여 명이 모여 가갸날을 선포하고 기념 잔치를 했다. 그때 한글날의 처음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 만해 한용운 님이 ‘가갸날’이란 시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다.

만해 한용운은 가갸날을 선포하자 그 기쁨을 시로 써 동아일보 제2247호(1926. 12. 7.)에 발표했다. 그 시 속엔 ‘축일 제일’ 같은 일본 한자말과 ‘데이 시즌’ 같은 영어보다 우리말이 더 중요하고 아름다우니 즐겨 쓰고, 한글날을 겨레의 가장 큰 잔칫날(국경일)로 만들고, 세계 문화 기념일로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80해 앞, 일본 강점기에 한자말과 영어를 쓰지 말 것과 한글날을 국경일로 삼고 세계 글자로 만들자고 외친 만해는 선각자요 선구자였다.


•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고, 1934년에 10월 28일로 바꾸다.

1928년에 기념일 이름을 ‘한글날’로 바꾸고 한글 반포일이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로 알고 음력으로 기념하다가 1934년에 양력과 음력 환산법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해 양력 10월 28일로 한글날을 바꾸었다.


• 1946년부터 한글날을 10월 9일로 하고 공휴일로 지정하다.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어 훈민정음 반포일이 음력 9월 상한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일제 탄압으로 기념식을 못하다가 일제가 물러간 1945년에 한글 학회는 음력 9월 상한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10월 9일로 날짜를 바꾸어 한글날로 정한다. 1946년 미 군정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한다. 한글 반포 500돌인 1946년 10월 9일에 덕수궁에서 기념식을 했는데 내외 귀빈과 시민 2만여 명이 모여 기념식을 하고 거리 행진도 했다.


• 1981년부터 한글날 기념식을 정부가 주관하다.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고 한글 학회와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등 한글 단체가 주관해 한글날 행사를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 때엔 대통령도 참석했고 한글날이 공휴일이었다. 그런데 전두환 군사 정권 때인 1981년부터 서울시가 주관해 기념식을 하게 하더니 그 다음 해인 1982년부터 문화공보부(지금 문화관광부)가 주관해 기념식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한글 단체가 주관할 때보다 마지못해서 하는 꼴이 되어 간다.


• 1990년 초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려 해 한글 단체는 그 반대 운동을 하다.

경제 단체는 공휴일이 많아 나라 경제가 어렵다며 공휴일을 줄여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니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겠다고 한다. 한글 학회, 애산학회, 대한 음성 학회,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한글문화원, 외솔회, 전국 국어 운동 대학생 동문회 들이 정부에 반대 건의문을 보내고 성명을 발표한다. 전국 국어 운동 대학생회와 동문회는 정부에 공개 토론도 제안하고 문화부를 항의 방문한다. 그래서 정부는 주춤하게 된다.


• 1990년 말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다.

한글단체와 노동단체가 강력하게 반대하니 조용하던 정부는 1990년 11월 5일 국무 회의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대통령령 제13155호)에서 빼는 결의를 한다. 그래서 1991년 한글날부터 쉬지 않는 단순한 3등 기념일이 된다.


• 1991년 한글 단체는 한글날 국경일 승격 운동을 시작하다.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끝내 공휴일에서 빼는 것을 보고 1991년 2월에 전국 국어 운동 대학생 연합회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정부를 규탄하면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하라고 외친 뒤에 서울 명동까지 거리 행진을 한다. 그리고 한글문화 단체 모두 모임(회장 안호상)은 1991년 10월 1일에 국회 의장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를 낸다. 그 뒤 한글 단체는 계속해서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고 청원한다.


• 1999년에 한글 단체 주체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를 열다.

국민의 애타는 호소도 못들은 체하는 정부는 한글과 한글날을 가볍게 보면서 한글날 기념식도 성의없이 한다. 그리고 1999년 2월에 한자병용법을 만들겠다고까지 나서는 등 한글 짓밟기 정책을 추진한다. 한글 단체는 분노하고 광화문 정부 종합 청사 앞과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그 반대 시위를 세차게 한다. 그러니 정부는 한글날 국경일 추진하겠다 말한다. 1999년 7월 9일 한글 단체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를 열었다.


• 2000년 한글문화 단체 이름으로 국회에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을 또 내다.

한글 단체는 공청회를 열고 그 국민의 소리를 정부에 건의했으나 정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한글 단체는 3월 1일엔 탑골공원에서 한글문화 독립 선언을 하고 한글 학회까지 거리 행진을 한다. 전국 지방에서도 같은 시간에 시위를 한다. 그리고 한글 단체는 그 이듬해 국회에 다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를 내고 국회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2000년 16대 국회에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하다.

국민과 한글 단체의 소리를 국회에서 받아들여서 10월 2일 신기남 의원 외 34명이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을 의원 입법안으로 발의한다. 그리고 그 해 11월 15일 자로 여야 의원들이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을 발족한다. 그리고 의원 모임은 11월 30일에 국회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 2000년 12월 4일자로 국회 행자위에 부쳤으나 통과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국회 행자위는 소위원회만 한 번 열고 다시 국민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를 열기로 하고 논의를 중단한다. 재벌과 행정자치부가 반대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들은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바라는 의견 제시안’을 발표한다.


• 2001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가 태어나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가 법안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자 한글 단체와 각계 사회 인사 15,224명이 참여한 범국민 추진 위원회를 만든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 등 고문 195명, 위원장에 전택부 기독 협의회 명예 총무, 추진 본부장에 서정수 교수를 비롯한 임원진 75명과 지도 위원 1,391명, 추진 위원 304명 등을 뽑고 활발하게 추진 운동을 벌인다.


• 2001년 3월에 ‘한글날을 국경일로’ 홍보 책 첫째 호를 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는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요구하는 홍보 책자를 만들어 정부와 언론사와 국회에 뿌리며 호소한다. 전택부 위원장과 서정수 본부장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행정자치부 장관과 국회의원들을 만난다.


• 2001년 4월 종로 기독교 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추진 범국민 결의 대회’를 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위원장 전택부)는 4월 10일 오후 1시, 기독교 청년 회관(서울 종로구) 대강당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범국민 결의 대회’를 열고 강연회를 한 뒤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과 국회 의장, 국회의원, 국무총리들에게 보내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대회장 앞길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한 시민 서명 운동을 펼쳤다. 서영훈, 이어령, 김남조, 신기남 님 들이 강연을 했다.


• 2001년 문화관광부에서도 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힘쓰다.

문화관광부(장관 김한길)도 국어정책과(과장 김수연)를 중심으로 한글 단체와 함께 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힘쓴다. 그래서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에서 김수연 국어정책과장을 우리말 지킴이로 뽑기도 한다. 한글 단체와 문화관광부가 한마음으로 한글을 빛낸 첫 걸음이다.


• 2001년 8월 25일 전택부 위원장 청와대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다.

전택부 위원장이 2001년 7월에 손숙 씨가 진행하는 서울방송 라디오에 출연해서 대통령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건의하는 글을 읽었는데 그 뒤 청와대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전택부 회장은 8월 25일에 서정수 본부장, 나채운 부위원장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로 가서 관련 건의문을 전했으나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니 그 자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뒤 깨어나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살려 달라”라는 현대판 각설이 타령을 쓰셨다.


• 2002년 5월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촉구 대회를 열다.

오리 전택부 위원장 미수 기념문집 “우리의 소원은 한글날 국경일이오”를 내고 출판기념회도 겸했다.


2002년 8월 한글문화 연대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대회를 열다.

한글문화 연대(대표 김영명)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서울 종로 느티나무 카페에서 ‘한글날이 국경일이기를 바라는 33인 모임’을 발족했다. 이 모임에는 김영명 대표와 이대로(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 공동대표), 박원순(아름다운 재단 상임 이사), 서경석(우리 민족 서로 돕기 운동 집행 위원장), 이외수(소설가), 도법 스님(실상사 주지), 이수호(전교조 위원장), 김흥국(방송인) 등 33명이 참여하였다.


2002년 10월 1일 국회 앞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하다.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시민 단체 대표들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윤지희 회장이 ‘우리의 소원은 한글날 국경일’이라는 알림판을 목에 걸고 첫날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 이대로 공동 대표, 전국 국어 교사 모임 고안덕 회장, 전교조 이수호 위원장, 참여 연대 손혁재 운영 위원장 등이 끈 달아 일주일 동안 1인 시위를 했다.


2002년 10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대회 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는 556돌 한글날을 맞이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시 국경일 제정 촉구대회를 열고 각 당 대통령 입후보자들에게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해 문화 대통령이 되어주십시오.”란 건의문을 보낸다.


• 2003년도 4월 20일 “한글날을 국경일로” 홍보물 둘째 호 내다.

추진 위원회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홍보물 5000부를 찍어 국회와 정부, 언론 기관에 돌리며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촉구하다.


• 2003년 5월 14일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토론회 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위원장 전택부)는 교육 개혁 시민운동 연대(운영위원장 주경복)와 공동으로, 5월 14일 오후 3시부터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606돌 세종날 기념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토론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을 보냈다.


• 2003년 9월 20일 여의도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국경일 제정 촉구 대회를 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는 한글 학회,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전국 국어교사 모임,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등 시민 단체와 여의도 공원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국민대회’를 주최하고 시민과 학생이 모여 호소문을 읽고 서명운동도 했다.


• 2003년 국회에 국경일 제정법안 통과를 호소하다.

2003년 8월부터 12월 정기 국회가 막을 내릴 때까지 서정수 본부장과 이대로 사무총장은 여러 한글 단체 대표들과 국회에 살다시피 하며 국회의원들을 만나 법안 통과를 호소한다. 그리고 한글날을 맞이해 여러 사람이 여기저기 글을 쓰고 호소한다.


• 16대 국회가 문을 닫으며 법안이 자동 폐기된다.

12월 16대 국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서정수 본부장과 이대로 사무총장은 한글 단체 대표들을 번갈아 모시고 국회에 가 국회의원을 만나고 호소했으나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경제 단체와 행정자치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약속대로 공청회도 하지 않고 법안 심의도 하지 않고 자동 폐기된다.


• 17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국경일 제정 건의를 하고 방문 활동을 하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위원회는 17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을 활발하게 시작한다. 이대로 사무총장은 문화관광부와 행정자치부를 방문해 협조 약속을 받아 내고 오동춘, 최기호, 홍종현, 김기종, 김영조 추진 위원들과 국회에 방문하고 홍보 책자를 새 국회의원에게 나누어 주면서 방문 활동을 한다.


• 2004년 7월 15일에 신기남의원과 67명 여야 의원이 ‘한글날 국경일 지정 법안’을 내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민주당 손봉숙 의원, 무소속 신국환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67명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기 위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공동으로 발의했다.


• 2004년 8월 5일 ‘한글날 국경일 지정 청원’을 국회에 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는 김원웅 의원 소개로 국회에 청원한다.


• 2005년 3월 13일 광화문 마라톤 대회장에서 국경일 제정 촉구 홍보 활동하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는 3월 13일 새벽 6시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장에서 참가자들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딱지를 5,000장 만들어 마라톤 참가자 등판에 붙여 주었다.


2005년 5월 한글날 국경일 제정 홍보물 ‘한글날 국경일로’ 셋째 호를 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는 350쪽 홍보물 셋째 호를 만들고 이대로 사무총장이 한글단체 대표들과 함께 국회에 돌린다.


• 국회 문광위 위원들, 한글날 국경일 지정 법안 통과 촉구하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위원장 이미경)와 한글문화 세계화를 위한 의원 모임(회장 신기남)은 한글날을 맞이해 한글날 국경일 제정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다.


•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 회보 “우리말 우리얼 35호”를 한글날 국경일 특집으로 내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공동대표 김경희 김수업 김정섭 이대로)은 2005년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특집호를 내고 국회 행자위 위원들과 입법조사관들에게 직접 돌린다. 그리고 한글날 지정하는 ‘2005년 우리말 훼방꾼’에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를 뽑고 한글날 국경일 법안을 빨리 통과해 달라고 호소한다.


한글 단체들이 2005년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통과시켜 줄 것을 호소하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 위원회, 한글 학회,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외솔회,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 한글문화 연구회, 전국 국어 운동 대학생 동문회, 국어 문화 운동 본부, 한글문화 연대, 한글 사랑 누리 통신 모임 등 한글 단체는 국회의장과 행정자치위원장들에게 2005년이 가기 전에 꼭 ‘한글날 국경일 지정법안’을 심의 통과시켜 달라는 건의문을 한꺼번에 보내고 국회를 방문해 호소한다.

• 2005년 12월 1일 행정자치위원장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내기로 여야 합의하다.

제254회 국회(임시회) 제2차 행정자치위원회(2005. 6. 14.)에서 2004년 7월 15일 신기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 법률안」과 2004년 11월 18일 이규택 의원이 발의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 법률안」을 일괄 상정하여 대체 토론 후 소위로 돌려보냈다. 제256회 국회(정기회) 제1차 법안 심사 소위원회(2005. 11. 30.)에서 2건의 법률안을 심사한 결과 각각 본회의에 부치지 아니하기로 하고 그 내용을 통합․보완하여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기로 한다. 제256회 국회(정기회) 제10차 행정자치위원회(2005. 12. 1.)는 법안 심사 소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받아들여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심사 의결한다.


• 2005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 법안’이 통과되었다.

행정자치위원회 이름으로 낸 대안(의안 번호 173572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일부 개정법률안)을 내고 2005년 12월 7일에 행정자치위원회를 통과하고 12월 8일에 본회의를 통과한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일부개정법률안

 

■ 제안 경위

1. 제254회 국회(임시회) 제2차 행정자치위원회(2005. 6. 14.)에서 2004년 7월 15일 신기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 법률안」과 2004년 11월 18일 이규택 의원이 발의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일부개정 법률안」을 일괄 상정, 대체 토론 후 소위로 돌려보냄.

 

2. 제256회 국회(정기회) 제1차 법안 심사 소위원회(2005. 11. 30.)에서 2건의 법률안을 심사한 결과 각각 본회의에 부치지 아니하기로 하고 그 내용을 통합․보완하여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기로 함.

 

3. 제256회 국회(정기회) 제10차 행정자치위원회(2005. 12. 1.)는 법안 심사 소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받아들여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일부 개정 법률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심사·의결함.

 

■ 개정 이유

우리 민족사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현재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의거 국가 기념일로 규정되어 있는 한글날을 같은 법에 의한 국경일로 승격 규정함으로써 한글의 독창성과 중요성을 드높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함.

 

■ 주요 내용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함(제2조 삼일절,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에 제5호 한글날 신설.


• 2006년 1원 19일 국회에서 국회 의장과 국회의원, 한글 단체와 시민 단체 대표들이 모여서 한글날 국경일 승격 축하 모임을 하다.

한글날이 국경일로 확정된 뒤 국어단체 연합(회장 최기호)을 중심으로 3월 20일에 ‘한글날 경축 준비 공청회’를 열고 국민의 의견을 수집해 만든 경축 행사 기획안을 만들었다. 그 행사 기획안을 토대로 2006년 7월 7일 한글 회관 402호에 ‘한글날 큰 잔치 조직 위원회(공동 집행 위원장 이상규, 최기호)를’ 꾸리려고 사무실 입주식을 했다. 그리고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에서 한글날 경축 열린음악회를 열고, 훈민정음 반포 재현식을 한 뒤에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세종대왕 어가행렬을 하는 등 여러 가지 한글날 경축 행사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한글날은 멋있고 뜻있는 진짜 국경일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3. 왜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나?


한글 학회와 외솔회,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 등 한글 단체뿐 아니라 국회의원과 전교조, 국어 교사 모임, 참교육 학부모회 등 교육 단체와 시민 단체까지 힘을 모아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든 것은 한글만 살고 잘되자는 것이 아니고 한글이 빛난 바탕에서 우리 겨레와 나라의 모든 일이 잘 풀리게 하자는 꿈을 가지고 만들었다. 이제 그런 한글날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왜 우리가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으며 한글날의 참뜻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첫째, 우리는 정부와 정치인과 경제 단체가 한글과 한글날을 우습게 여기는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했다. 한글날을 온 국민과 함께 뜻 깊게 보내는 데 더 힘써야 할 지배층인 이들은 한글날을 3등 기념일로 내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면서 한국말을 짓밟았다. 중국의 지배를 받을 때는 중국 한문을 섬기고, 일본의 식민지일 때는 일본말을 나라말로 섬기고, 미국의 지배를 받다 보니 미국말을 섬기는 꼴을 우리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한글날을 문화 국경일로 만들어 그런 풍조를 막고 싶었다.

 

둘째, 한글로 우리 한글문화, 자주 문화를 꽃피우자는 것이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가 인정하는 세계 으뜸 글자다. 그런 글자를 우리는 헌신짝 보듯 하면서 잘 이용하지 않았다. 중국 한자나 일본 책이나 미국말만 우러러보고 베끼는 꼴이었다. 그러니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하나 내놓을 만한 우리 문학 작품이 없었다. 거의 중국 한문으로 쓴 책이고 중국 문학과 문화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일본의 식민지 때 길든 일본식 한자 혼용이 우리 말 글살이로 알고 한글을 살려 쓰는 걸 가로막는 한국인이 많았다. 이제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글을 써서 고급스러운 우리 한글문화가 꽃피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셋째, 한글로 정보 통신 강국이 되자는 것이다. 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한글을 잘 이용해 과학 강국, 철학 강국이 되자는 것이다. 오늘날 정보 통신 학자들은 세종대왕이 셈틀(컴퓨터)을 이용한 정보 통신 시대를 내다보고 600년 전에 한글을 만든 거 같다고 할 정도로 한글은 셈틀과 찰떡궁합이다. 오늘날은 정보 통신 시대요 문화 경쟁 시대라고 한다. 실제로 한글은 우리가 정보 통신 강국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고 크게 이바지했다.

 

넷째,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으로 온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글을 만들었다. 그런 정신으로 정치를 해서 나라를 이끌고 국민이 모두 따르면 살기 좋은 나라가 빨리 될 것이다. 온 국민이 한글로 지식을 빨리 많이 얻어서 국민 수준을 빨리 높여 줄 때 정치도 안정되고 경제도 빨리 좋아질 것이다. 몇 해 전에 이름난 미래학자가 “앞날은 동양 문화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한 일이 있다. 한글은 우리 문화뿐 아니라 동양 문화 수준을 높여 줄 것이다.

 

다섯째, 한글로 겨레 자긍심과 자신감을 키우자는 것이다. 우리가 5천 년 역사를 가진 나라요 민족이지만 세계에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문화 유적이나 유물이 드물다. 그러나 한글을 만든 머리와 정신은 그 어느 나라나 민족에게도 자신 있게 자랑하고 뽐낼 수 있다. 한글은 민족이 일어나는 기운을 북돋울 것이다. 한글의 주인이라는 자긍심 속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주체성 있는 학문, 예술, 정치, 문화를 꽃피워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것이다.



4. 마무리


  우리에게 삼일절,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같은 4개 국경일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중앙정부에서 기념식이나 한번 하는 거로 끝나고 국경일의 참뜻을 살리는 국민 참여 행사가 적었다. 그래서 근래엔 국경일이 그저 등산이나 가고 집에서 노는 날로만 여기는 이가 많다.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고 온 국민이 함께 경축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제 한글날은 본래 국경일의 참뜻을 살려 정부와 온 국민이 함께 참여해 즐기는 날, 나라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날로 만들자. 그것도 문화 국경일로 만들어 우리 자주 문화를 꽃피게 하고 온 누리에 자랑하는 날로 만들자. 500년 동안 천대받던 한글이 제빛이 나고 제 대접을 받게 하자..

  세계 으뜸가는 글자를 만들고서도 500년 동안 천대하고 잘 이용하지 않은 건 부끄러운 일이고 바보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라도 더 먼 앞날을 내다보며 이 한글을 잘 부려 쓰고 한글 꽃을 피워 온 누리를 아름답게 만들자. 경제 단체장과 대통령은 한글날을 짓밟았지만 깨어 있는 국민이 한글과 한글날을 살려서 국운이 상승하고, 우리 겨레가 우뚝 서게 했다는 말을 후손들로부터 듣자.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