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간추린 한문글자 이야기

한글빛 2016. 7. 20. 06:40

간추린 한문글자 이야기

                                                                                 우리말 바로쓰기 모임 회장 김정섭

 

1. 한문글자는 언제 만들었나?


한문글자는 3천 년 전 중국 갑골문자(甲骨文字)에서 비롯하여 은나라 때 그런대로 글자꼴을 갖추게 되는데, 만든 때와 만든 곳에 따라 모양이 제가끔 달랐다. 뒤이어 오랫동안 꾸준히 한 자 한 자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글자 수를 불리면서 이웃 나라로도 번져나가서 중국과 함께 써 오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소리글자인 간체자로 탈바꿈하여 중국 나라글자로 쓰기에 이르렀다. 한문글자는 어느 한 때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3천 년에 걸쳐 뭇 사람이 만든 것이다.

 

2. 한문글자는 누가 만들었나?


중국 옛 책에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씌어 있다. 중국은 예부터 저네를 으뜸으로 삼고(中華思想) 변두리 겨레는 모두 오랑캐라 했다. 남만(南蠻), 북적(北狄), 서융(西戎), 동이(東夷)‘가 그것이다. 동이족은 중국 동쪽에 사는 오랑캐요, 곧 배달겨레를 일컫는 이름이다. 그러니 우리 겨레가 한문글자를 만들었다는 말인데 오랑캐가 중국글자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터무니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배달겨레가 한문글자를 만들었다면 그때 우리 겨레는 마땅히 중국말을 썼어야 한다. 중국말을 쓰지 않는 사람은 한문글자를 만들 수도 없고 만들 까닭도 없다. 배달말 말소리를 담을 수 없는 글자를 왜 우리가 만든단 말인가?


2천 년 전 신라 때, 우리 겨레가 배달말을 쓴 것은 향가에 잘 나타나 있다. 배달말을 쓰던 우리 겨레가 한문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다만, 나라 살피가 뚜렷하지 않았던 옛적에, 이웃하여 살던 겨레가 중국 한문글자를 쉽게 빌려 쓸 수 있었고 쓸데가 있을 때는 그 나름대로 몇 자씩 만들어 보태기도 하고, 한문글자를 부려 써서 제 겨레말을 적으려 했을 것은 짐작할 수 있다. 향찰, 이두나 일본 가나따위가 이를 뒷받침하는 보기다.


일본글자 가나는 우리가 쓰던 이두처럼 한문글자 획을 따서 만든 것이고 저네 말글살이에 쓸모가 있을 때는 새 한문글자도 만들었는데 이를 국자(國子)’라 한다.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국조자(國造字)’를 만들어 썼다. 국자에는 (), (), (), ()’, 국조자에는 ()’, (), (), ()‘ 따위가 있다. 한문글자는 중국 사람들이 만들었고 이웃 여러 겨레가 몇 자씩 거들었다고 보면 된다. 어느 한 겨레나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3. 한문글자는 모두 얼마나 되고 요새는 몇 자나 쓰나?


한문글자는 1716, 청나라 때 펴낸 강희자전(康熙字典)’49,030자가 실려 있다. 3천 년 동안 만든 거의 모든 한문글자다. 하지만 위로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를 거치면서 이 많은 글자는 차츰차츰 쓰임새가 줄어서 거의 다 고전사전에만 남았고 청나라가 끝날 무렵에는 대충 5천 자로 말글살이를 했다고 말한다. 한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태평양 전쟁 뒤, 글자를 보는 눈이 새로워지면서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꼭 쓸모가 있는 글자만 가려잡아 쓰기로 했다. 이를 상용한자(常用漢字)라 한다. 일본 2,136, 한국 1,800, 중국 2,205자다. 이 세 나라 상용한자에서 같은 글자 800자를 빼면 세 나라에서 쓰는 한문글자는 모두 3,741자다. 그런데 중국에선 얼마 뒤 이마저 버리고 1986년에 간체자 2,236자를 만들어 나라글자로 쓰니 요새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문글자는 2300자쯤 된다.

 

4. 한문글자 글자꼴은 어떠하며 오늘날 세 나라 글자살이는 어떤가?


옛날에는 같은 글자라도 만든 때나 쓰는 곳에 따라 모양이 달라서 진시황이 한 가지로 만들기도 했으나 다시 여러 모양으로 바뀌다가 열 가지 글자꼴(十體)’로 틀을 잡아 오래도록 써 왔는데 이밖에도 속자(俗字)’, ‘약자(略字)’가 따로 있다. ‘약자중국, 일본, 한국 약자가 모양이 제가끔 다르다. 그래서 한문글자는 한 글자를 열 몇 가지 다른 글자꼴로 쓰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선 간체자만 쓰고 대만에선 번체자와 중국 약자를 쓴다. 일본에선 일본 약자와 상용한자만 쓰고 다른 글자를 쓰는 일은 없다. ‘掘鑿機掘削機로 쓰는 것은 ()’이 상용자가 아니므로 소리가 같은 ()’을 대신 쓴 것이다. 이를 동음대용자(同音代用字)’라 한다. ‘屍體死體’, ‘缺席欠席에서 도 대용자다. 그런데, 한국에선 입법, 행정, 사법, 교육, 국토부어느 곳 할 것 없이 법으로 정한 상용한자만 쓰는 데는 없다.


번체자, 속자, 약자와 일본 대용자(同音代用字), 중국 간체자까지 온갖 글자를 두루 쓰니 대충 5,400자라 하겠으나 성씨이름 글자니 하며 법원 판결을 받아서 쓰는 글자도 제법 있다. 게다가, ‘천자문을 가르치는 학원도 있고 붓글씨 학원에선 중국 고전인 한문 글귀를 쓰니 우리가 쓰는 한문글자는 강희자전에 실린 49,030자와 간체자 2,236, 약자, 속자, 성씨, 이름 자 따위 5만 자를 훨씬 넘어선다. 평생 공부해도 외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5. 한문글자를 읽는 소리는 어떤가?


같은 글자라도 읽는 소리가 예와 이제가 다르고, 고장과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에서는 마을마다 소리가 달라서 필담(筆談)’을 하는 일도 있다. 말소리가 다르니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글자를 써서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사람이 필담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 나라에서 쓰는 글자 모양, 뜻과 한자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달걀을 우리는 鷄卵(계란)’, 중국에선 鷄蛋(지단)’, 일본에서는 玉子(다마고)’라 하는 따위다.


중국, 일본, 한국에서 읽는 한문글자 소리는 아주 다르다. 중국에선 사성(四聲)’에 맞게 읽으므로 소리 같은 글자가 많지 않고, 일본에서는 같은 한문글자를 소리로 읽기도 하고 으로 읽기도 하므로 소리 같은 글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덜하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옥편에 실린 한문글자 ‘4천 자‘4백 가지소리로 읽으니 소리 같은 글자가 매우 많다. 따라서 소리 같고 뜻 다른 한자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를 빌미로 한문글자를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문글자를 써서 뜻 가름을 하자거나 말뜻을 똑똑히 밝히자는 것은, 입과 귀는 닫고 필담을 하자는 말이고 귀로 글자를 읽고 눈으로 말소리를 듣자.’는 말과 다름없다.

 

6. 한문글자만 알면 한자말 뜻을 곧바로 깨칠 수 있는가?

한문글자는 뜻글자이므로 글자만 보면 말뜻을 곧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문글자 한 글자에 적게는 서너 가지, 많게는 열 가지가 넘는 뜻이 담겨 있다. ‘()’자에는 큰기러기, 크다, 굳세다는 뜻이 담겨 있고, ‘()’자에는 공변되다, 드러내다. 한 가지, 함께, 구실, 임금, 어르신, 그대, 아버지, 시아버지, 공작(公爵), 공덕(功勞), 제후(諸侯), 주공(主公),’ 따위 열네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어느 것을 고르느냐에 따라 낱말 뜻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 글자 뜻과 달리 속뜻으로 풀어야 할 때도 많다. ‘홍모(鴻毛)’큰기러기 깃털이 아니라 매우 가볍다.’는 뜻이고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이 글귀에 얽힌 옛이야기를 알아야 뜻을 알 수 있다. 나라마다 다른 뜻으로 쓰는 글자도 많다. 한자말은 말뜻을 글자 뜻으로 풀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고 외어서 머릿속에 쌓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社會, 會社를 뜻풀이하려면 제대로 한문을 배운 사람이라도 땅띔조차 할 수 없다.

 

7. 마무리 

 

글자가 없을 때는 말로써 살아왔다. 말소리만 듣고 말뜻과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렸다. 말은 어릴 때 엄마, 아빠에게 배우고 자라면서 동무들과 놀면서 배우고, 스스로 보고 듣고 만지고 먹고 맛보고 일하고 겪으며 배운다. 이렇게 배운 말이 우리말이요 나날말이다. 엄마가 등에 업힌 아이에게 비행기라 하면 말도 할 줄 모르는 젖먹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은 비행기나 飛行機을 알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하는 말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말소리를 듣고도 뜻을 모른다면 그 말은 말이 아닌 소리거나 우리말이 아니다. 요즘 해묵은 글자 싸움이 한창이나 사람들은 모두 나 몰라라 왼고개만 친다. 일흔 해 동안 지겹게 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잡아 눈길을 주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말과 글은 우리 삶을 떠받치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한문글자 이야기를 간추려 적는 뜻은 우리가 어떤 말과 어떤 글자를 써야 할지 사람들이 스스로 판가름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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