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말로>는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기획취재> ‘우리 말글살이의 현황과 한글의 세계화’를 1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합니다. 이번 보도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2월16일까지 국내와 몽골, 중국, 일본 등의 동포들의 말글살이 현황 취재를 바탕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참말로>가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에서 선정한 언론사 유일의 ‘우리 말글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인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화를 이뤄, 우리 민족이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코자 합니다.(편집자 주) “우리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터를 잘 닦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혁명의 참모부가 있고, 정치·경제·문화·군사 모든 방면에 걸치는 우리 혁명의 전반 전략과 전술이 세워지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인 평양을 중심지로, 평양 말을 기준으로 언어의 민족 특성을 보존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다!” - 고 김일성 주석 담화(1966, 문화어 제정을 지시) 북측 말글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민족어’사용을 규범화하여, 한자말과 외래어를 고유한 우리말로 고치고 우리말을 체계 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일상화된 한자 정도를 제외하고는 한자어 표현을 피하고 있다. 논설과 보고 등에는 이런 한자말들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공식 담화에는 우리말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북 사회 성격을 대변하는 민족어 사용 규범화 ‘민족어’사용은 단순한 ‘말글정책’이 아니라 북측 사회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할 것이다. 북측은 인민대중을 말글발전의 담당자이며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본다. 한자말은 봉건시대에 받아들인 불필요한 것으로, 폐지되어야 할 구시대 유산으로 규정했다. ‘민족어’사용은 노동자 농민의 계급 요구와 지향을 올바로 구현할 수 있는 사회주의 발전을 위한 기본전제로 간주한다. 북측 말글정책에는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주체’가 적용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언어 철학의 기본 원리인 ‘선전선동’과 ‘대중교화’에서 나아가 ‘혁명과 건설의 힘 있는 무기’로서 말글의 혁명성을 강조하고, 사회발전에 맞게 말글을 개조해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즉, 주체언어 이론의 특징은 언어는 노동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사람의 교재수단이면서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힘 있는 무기가 된다. 또한 민족성을 나타내는 순수성을 보전하고, 한자말·외래어 사용을 규제하면서 언어학에서도 주체를 세워 발전시키고 민족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의 한자어 정책은 ▲고유어를 적극 찾아 쓸 것 ▲새로운 말을 만들 때는 우리말의 어근을 따를 것 ▲중국식 한자어는 사용하지 말 것 ▲우리말로 굳어진 한자어는 그대로 사용할 것 등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한자교육은 하고 있다. 한자 대신 고유어를 찾아 쓴 경우를 살펴보면, 균죽이기(살균)·견줌무게(비중)·달품(월급)·큰물(홍수)·사진종이(인화지)·붙어살이(기생)·바투보기눈(근시)·따라난병(합병증)·검밝기(명암)·흐름길(회로) 등이다. 한자와 외래어를 철저히 고유어로 바꿔 쓰는 정책 외래어는 한자어와 마찬가지로 정리대상이며, 고유어로 다듬어 쓰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쓰는 말은 인정한다. 노래춤묶음(버라이어쇼), 노래이야기(오페라), 끌신(슬리퍼), 내민대(발코니), 얼음보숭이(아이스 크림), 모서리뽈(코너킥) 등이 다듬어 쓴 경우다. 북측은 ‘혁명의 무기’로서 말글정책에 큰 비중을 두어, 정권 수립초기인 1947년 5차 북조선 인민위원회에서 ‘문맹퇴치 운동에 관한 결정서’를 채택하여 49년까지 문맹퇴치를 위한 운동을 벌였다. 해방직후 북녘 성인문맹자는 230만에 이르렀지만 이런 노력으로 몇 년 만에 200만 이상의 문맹을 퇴치하는 성과를 올린다. 김일성 종합대학은 1947년 조선어문 연구회를 세웠고, 1964년 2월 내각결정 제7호로 교육성 직속 학술용어사정위원회를 만들어 국어사정위원회가 세워질 때까지 일본 한자어와 일본말을 버리는 일을 강력하게 벌였다. 또한 1952년 10월 과학원이 창설되어 그 안에 어문학 연구소를 만들고 언어전반을 정리하는 등 통제기관으로써 역할을 한다. 말글정책과 관련, 현존하는 주요기관은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와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가 있다. 사회과학원은 1964년 2월 신설됐고, 그 안에 언어학연구소를 만들어 사회·인문 과학 분야 정책을 세우고 관련 언어 교육을 관리했다. 국어사정위원회는 ‘조선말규범집’(1966년)으로 표기법을 개편하고, ‘문화어’ 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언어 정책의 중추기관으로 자리 잡아 왔다. 국가기관에서 강력히 조선말 사용 정책 추진 조선말규범집은 ‘평양 말을 중심으로 노동자 계층에서 쓰는 말’을 ‘문화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국어학습지 ‘문화어 학습’이 1968년 창간되면서 대중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1988년 개정된 조선말규범집을 따른다. ‘문화어’ 운동의 주요 내용은 일제식민지 시절 찌꺼기 말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고,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북측은 ‘문화어’운동을 벌여 일본 한자말과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고, 방언을 연구하여 좋은 우리말을 살려 썼다. 또한 땅 이름도 일제식민지 시절 일본식 한자말로 바꾼 것을 되찾아 쓰려고 애써왔으며, 그만큼 겨레말에 자긍심이 높다. 북녘 문화어의 가장 큰 특징은 한자어 표기에서 두음범칙을 적용하지 않고 항상 한가지로 적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뉴대(유대), 력사(역사), 닉명(익명), 로동(노동), 로인(노인), 량심(양심), 녀자(여자), 규률(규율), 선렬(선열) 등이다. 또한 ‘붙여 쓰기’를 많이 인정한다.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의 대상으로 묶이는 것은 모두 붙여 쓰고, 보조용언 등도 대부분 붙여 쓰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무엇때문에’, ‘대문밖에’, ‘학교앞에’, ‘우리들전체’, ‘울듯말듯하다’ 등이 그 예다. 남과 북 말글 정책 차이 커지고 있어 북에서 ‘말다듬기’를 열심히 한 탓으로 거의 그대로 외래어를 사용하는 남녘의 말과 뜻이나 표현이 다른 것들도 생겼다. 남쪽에서 ‘계산기’라면 ‘전자계산기’를 생각하지만 북에서는 컴퓨터로 통한다. 아울러 해커를 ‘헤살꾼’으로, 스파게티를 ‘구멍구수’로 쓰며, 전문·학술용에서는 더욱 차이가 심하다. 또한 일없다(바쁘지 않다)·가두녀성(전업주부)·가락지빵(도넛)·에디벌레(반딧불이) 등은 가리키는 표현이 다른 경우다. 같은 단어인데 뜻풀이가 조금 다른 경우도 있는데, 남녘의 ‘부자’는 '살림이 넉넉한 사람‘을 뜻하고, 북에서는 ’재산을 많이 가지고 호화롭게 진탕 치며 살아가는 자‘을 말한다. 한편, 사회주의 체제에서 새롭게 만들어 쓰는 말들도 있다. ‘군중로선’(인민대중을 위해 충실히 일하기 위한 원칙), ‘농촌테제’(농촌문제에 대한 태도), ‘속도전’’(모든 사업을 최단기간에 최상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사업 추진 방식), ‘집체담화’(집단으로 하는 이야기) 등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