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이대로 공동대표,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법안 통과에 공개토론 제안
"국민 의견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국회에서도 충분히 토의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빨리 서둘러 통과시켰습니다. 이제 행정부로 넘어가 공표 절차만 남은 줄로 압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검토해 보니 문제 투성이였습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의 이대로 공동대표(72)는 "법안 심의과정과 속기록을 살펴보았다"면서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13일 국회가 '초등학교 1,2학년 방과 후 영어 교육을 허용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킨 데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 "영어 조기교육 문제 많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의 이대로 공동대표는 1일 영어 조기교육에 문제가 많다며 국회에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신향식 |
"국회 이찬열 교육위원장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대통령에게도 똑 같은 내용으로 건의문을 보냈습니다. 이 법안은 우리말 교육과 우리 말글살이를 크게 훼손할 겁니다."
이대로 대표는 "지금 영어교육 열풍은 불나비가 죽을 줄도 모르고 불빛을 향해 가는 꼴"이라면서 "이대로 가다보면 제 말글을 잃고 그 겨레까지 사라진 만주족(여진족)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에서도 이 사안의 중대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국회가 정신을 차리고 교육을 돈벌이나 출세 수단으로 내몰지 말아야 합니다. 영어 조기교육이 좋다면 너도나도 유치원생 때부터, 갓난아기 때부터, 태교 때부터 시작할 거 아닙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공부가 많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한글이름짓기연구소에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의 이대로 공동대표를 만나고 1일 전자우편으로 보충 취재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 "한글로 이름 짓자" 한글학회와 한글이름연구소 등 한글 단체들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배달겨레 얼말글 빛내기 기자회견’ 행사를 열었다. ⓒ 한글이름연구소 |
- 공개 토론을 제안한 배경이 무엇인가요?
"지난달 13일 국회는 이 법안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기습 상정했습니다. 3일 만에 법사위와 본회의까지 서둘러 통과시켰죠.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궁금해서 국회 이찬열 교육위원장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 속기록을 확인했나요?
"전에 이런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위원장이 갑자기 상정하고 통과시켰습니다. 국회의 법안 심의 과정과 속기록을 보니,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도 제대로 토론한 흔적이 없습니다. 국회는 놀기만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만히 있다가 미세먼지 법안과 함께 이 법을 기습 상정하고 통과시킨 것이죠. 빨리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영어 조기교육 관련 법안을 기습 처리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 왜 문제가 있다고 보나요?
"이 법안은 우리말과 교육을 아주 심하게 망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인지 의심됩니다. 그런 방식의 영어 교육이 문제가 많다는 이유로 상위법으로 지난달부터 못하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시행하기도 전에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교육을 허용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때 바로 21개 시민교육단체는 반대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교육업자들의 요구 때문인지,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인지 국민 의견도 충분히 듣지 않고 서둘러 처리해 버렸습니다. 그 까닭을 듣고 싶습니다."
- 미리 공부해서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면 좋은 일 아닌가요?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도 잘하면 좋지요. 그러나 제 말글을 잘 가르치고 잘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입니다. 그 부작용도 고려해야겠지요. 우리말이 영어에 밀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피해와 부작용이 엄청나게 많아요."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배우는 시기를 앞당긴다고 해서 영어 실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20여 년 전 '영어를 10년 넘게 배우고도 영어 한마디 못한다'면서 영어 조기교육을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중고교 영어 교육 환경과 교재, 교육 방법이 미흡하고, 영어 교사부터 회화를 못하는 데 그 문제부터 개선하는 일이 더 급합니다. 무조건 조기교육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영어 조기교육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을 겁니다."
- 영어 조기교육에 반대하는 이유는?
"신라 지증왕 때(서기 500년)부터 중국 한문과 문화를 오늘날 영어 섬기듯이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250년이 지난 경덕왕(서기 750년) 때엔 완전히 중국 문화의 곁가지가 되어서 조선시대까지 1000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영어에 빠지면 100년도 안 되어 미국 문화와 영어 속국이 될까 걱정됩니다. 우리 얼과 말글의 독립은 불가능하게 되고 후손들까지 계속 강대국의 지배 속에 살 것 같아 답답합니다."
-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교통 통신이 발달하고 국제화 시대가 되어 외국인을 만나거나 외국에 갈 일이 많아졌습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를 잘하면 좋다는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중고교 영어 교육 환경과 교재, 교육 방법부터 개선하고 교사 수준을 높이는 것이 먼저 할 일이죠. 엄청나게 크게 발달한 정보통신 기계를 외국어 교육에 활용하고, 그렇게 하고도 안 되면 조기교육을 생각해 볼 일인 겁니다. 일부 영어 교사들은 영어회화를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원어민 교사만 찾습니다. 그래서 그 효과보다 피해가 많고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없지요."
- 영어 조기교육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있다면?
"기러기 아빠가 늘어나고 가정이 파탄난 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거리에는 한글 간판이 사라지고 영어 간판이 늘고 있습니다. 영어 편식교육으로 교육이 흔들리고 망가지고 있습니다. 새로 생기는 회사와 상품 이름이 거의 영문입니다. 방송국 이름과 방송 제목들도 온통 영어 천지지요. 정부나 정당들까지도 국어기본법을 무시하고 말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 또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 허덕입니다. 이런 교육비 부담으로 젊은이들은 혼인도 안 한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이런 피해와 부작용 사례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참된 한국인이 되는 교육은 뒷전입니다. 무거운 학습 부담에 아이들이 시달립니다. 이걸 이거지 못하면 정신병자가 되거나 말썽꾼이 되는 거 아닌가요."
- 결국 영어 사대주의를 걱정하시는군요.
"이러다간 유치원까지 영어 조기교육을 하자고 할 것이며,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하거나 미국의 한 주가 되자고 할 거 같습니다. 아니 그대로 가면 50년 안에 신라가 중국 문화와 한문 속에 빠진 꼴이 되고, 더 나아가면 제 말글을 잊어버리고 겨레까지 사라진 만주족(여진족)처럼 될까 걱정됩니다."
- 언제부터 한글운동을 시작했나요?
"저는 일생동안 우리 말글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제 말과 글이 있는 데도 안 쓰고 한자만 섬기는 나라 꼴을 보면서 1967년 대학생 때부터 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세상을 만들어 참된 자주문화강국이 되어 어깨를 펴고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간신히 한자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는데 영어에 우리말이 죽어가고 있으니 속이 탑니다."
- 이찬열 교육위원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영어 조기교육을 주제로 공개 토론을 했으면 합니다. 우리 겨레의 이름으로 공개 토론을 요구하는 글을 이 위원장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째 읽어보지도 않습니다. 국민의 소리를 무시하는 거지요. 만약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우리말과 얼을 짓밟는 헤살꾼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강조한다면?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을 무작정 앞당기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중고등학교 영어교육 환경부터 손보기 바랍니다. 지난날 영어 조기교육으로 얻은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신향식 kongpap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