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아침마다 종로구 도림동 주시경마당 앞을 지나 경복궁 옆에 있는 내 사무실에 간다. 그런데 이곳을 지날 때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좋지 않은 일이 떠올라 마음이 씁쓸해진다. 2011년 서울시가 이 주시경마당에 주시경과 헐버트를 기리는 조각품을 세우기로 하고 터까지 팠는데 이웃 아파트 부녀회장이 세우지 못하게 해서 다른 곳에 세운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분은 아줌마 댓 명을 데리고 서울시장실에 찾아가 “그 공원은 날마다 주민들이 산책하는 곳이다. 거기 있는 배롱나무 꽃이 좋은데 옮기면 안 된다. 다른 곳에 세우라”라고 야단치는 바람에 그곳에 세우지 못했다. 설익은 민주주의가 겨레와 나라 일을 짓밟은 일이다. ▲ 2011년 서울시는 이렇게 주시경과 헐버트 부조상을 세우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으나 이웃 아파트 부녀회장이 국가이익보다 자신들 이익만 내세우며 공사를 중단시켜서 세우지 못했다. © 리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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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물은 오른쪽 찍그림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공원 이용에 아무런 불편이 없고 길에서도 보이고 좋았으나 주민 반대로 왼쪽 찍그림처럼 그 아래 숲속 구석에 세우게 되었다. © 리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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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과 헐버트를 기리는 조형물“세우기는 서울시가 한글이 태어나고 자란 경복궁 광화문 일대를 한글 역사문화 지역으로 꾸미는 ’한글마루지사업‘ 가운데 하나로서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고 한글을 살리고 지키려다가 돌아가신 주시경 선생이 살던 집터 옆 주시경공원에 세우기로 했었다. 이 사업은 서울시가 역사 유적과 문화인물을 찾아 문화도시로 꾸미려는 뜻 있는 사업이다. 사실 서울은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고 한글은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데 내 세울만한 그 역사 문화유적이 없다. 일본 강점기에 헐리고 사라진데다가 6.25 전쟁 때에 불타고 그 자취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정부와 서울시가 이 일을 안 해서다. 나는 일찍이 2007년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 우리 자주문화 성지로 꾸미고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과 연결해서 국민 교육장 겸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를 자랑하는 관광지로 만들자고 정부와 서울시에 건의한 일이 있다. 그런데 2009년 내가 한글학회에서 일할 때에 서울시 도심역사재생과 황금룡 팀장이 찾아와 한글문화유적지를 살펴보고 싶다기에 한글회관에서부터 세종대왕동상이 있는 세종로와 경복궁, 그리고 통인동 길가에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을 알리는 조그만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데리고 가서 보여준 일이 있다. 그 때 나는 세종대왕이 나신 곳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그에게 “저 1km 앞 한글회관으로 가는 길가에 주시경 선생이 살던 집터가 있고 좀 더 멀리 주시경과 헐버트, 서재필이 한글로 독립신문을 찍어낸 배재학당 터가 있다. 방금 둘러본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과 함께 이곳들은 매우 중요한 한글문화 성지로서 서울 역사 유적지다. 이 일대를 한글문화관광지로 꾸미면 우리나라와 서울시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오늘날 세종대왕을 존경한다면서 그 분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한글을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모르는 국민이 많다.”라면서 서울시가 이 역사유적지를 찾아 시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오른쪽 찍그림은 2007년 글쓴이가 박주웅 서울시의회 의장에게 세종대왕 나신 곳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건의문을 전달하는 모습, 왼쪽은 2010년 내가 서울시 도심역사재생과 황금룡 팀장에게 세종대왕 나신 곳을 알리는 표지석을 보여주니 넉 놓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 © 리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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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서울시 황금룡 팀장은 통인동 길가에 초라하게 놓인 세종대왕 나신 곳을 알리는 신문지 한 장 크기의 표지석을 한참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이런 줄 몰랐다. 세종대왕을 존경한다며 이렇게 푸대접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높은 분들을 설득해 꼭 한글문화 관광지 조성사업을 하도록 힘쓰겠으니 도와주세요.”라고 내게 말했다. 일찍이 2007년 나는 박주웅 서울시의회 의장에게 세종대왕 나신 곳을 찾는 사업을 하자고 건의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기에 그가 고맙고 기뻤다. 그래서 나는 감동해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는 서울시 과장과 국장을 내게 소개했고 나는 그들을 설득해 한글마루지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한글마루지사업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업계획안을 만든 뒤 먼저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에 한글글자마당을 만들고, 그리고 주시경공원에 주시경 선생과 1890년 우리 역사상 처음 한글로 ‘사민필지’란 교과서를 만들고 1896년 서재필 주시경 선생과 함께 최초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만든 미국인 헐버트의 전신상을 넣은 조각품과 세종로공원에 조선어학회한말글수호탑을 세우게 되었다. 나는 세종대왕과 그 분들에게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게 되어 기뻐하고 있는데 이 부녀회장이 그 곳에 못 세운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그래서 한글회관에 그 아파트 부녀회장과 아줌마들을 오라고 해서 서울시 관계자와 같이 설득하기로 했다. ▲ 왼쪽은 2011년 서울시가 세운 한글마루지 조성사업 안, 오른쪽은 한글마루지사업 계획 지도. © 리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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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한글회관으로 찾아온 그들에게 나는 “이 일은 한글과 우리나라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고 그 곳에 세워야 합니다. 일찍이 서울시는 그 공원 이름도 주시경마당, 그 앞길도 주시경길이라고 지었습니다. 배롱나무는 그 조각품 옆으로 옮기고 더 잘 가꾸겠습니다. 주시경 조형물은 공원을 더 멋있게 해줄 것이니 허락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하니 70대 할머니인 그 부녀회장은 “나도 서ㅇ대를 나왔고 남편도 같은 대학 법과를 나와 변호사다. 내 자식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 나도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사람이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주민이 안 된다면 안 된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 뒤 간신히 설득해서 주시경공원 안에 그 조형물을 다시 세우게 되었지만 한글가온길에서 보이지도 않는 공원 구석 숲속에 세우게 되었다. 난 이 일을 겪으면서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좋은 것인가? 우리가 자주국가가 되고 민주주의 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 도대체 일류대학이 무엇인가? 나라와 온 겨레를 위한 일은 독재란 말이 나오더라도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라고 절실하게 느꼈다. 그런데 요즘 날마다 이 주시경공원을 지나면서 일본 식민지 앞잡이 양성소인 경성제국대학 출신 교수들의 제자와 후배들이 한글을 못살게 군 많은 일들이 떠올라 안타깝고 섭섭하다. 주시경 조형물이 공원이용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오늘도 배롱나무 한 그루보다 한글을 우습게 여기는 저 친일 기득권자들과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슬프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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