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한자를 쓰지만 한자가 일본 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앞에서 우리말 이름은 ‘한말’이고 우리글자 이름은 ‘한글’이며 이 두 말을 모아서 말할 때에 ‘한말글’이라고 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한자를 쓰더라도 우리말투로 글을 쓰려고 애쓴 “이두, 구결, 향찰”식 글쓰기를 한 분들이 “첫 우리말 독립 운동가들”이고, 설총이 그 일을 한 분임도 밝혔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언론인이나 학자들이 고조선 단군 때에 ‘가림토’란 우리 소리글자가 있었고 세종대왕이 그 글자를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단군 때에 그런 우리 글자를 만든 이들이 있었다면 그들을 첫 우리말 독립운동가라고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만약에 그 때에 우리 글자가 있었다면 왜 그 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그 글자를 쓰지 않았단 말인가? 또 그 글자로 쓴 글이 왜 하나도 없단 말인가? 천 년이 넘도록 그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100여 년 전에 신분도 뚜렷하지 않은 어떤 이가 한문으로 ‘한단고기’란 책을 냈는데 거기에 그런 말이 있다고 그 말을 믿고 떠든다. 그런데 그 책을 썼다는 사람도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으며 누구에게 그런 걸 배우고 알았는지 뚜렷하지 않다.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러니 소설과 같은 헛소리요 희망사항일 뿐이라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말과 사람을 우리말 첫 독립운동가라고 말할 수 없다. 나도 고조선 때가 한글과 같은 소리글자를 만들어 썼고 우리 한아비들이 그 때에 우리 글꽃을 활짝 피고 살았다면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데 세종대왕이 그 글자를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세종대왕과 한글을 짓밟는 일이고 빛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아니면 세종대왕과 한글이 훌륭하니 그 훌륭함을 가리려고 일본인이나 또는 진짜 국수주의자가 그런 말을 꾸몄을 수도 있다. 한 때에 일본에 한글과 닮은 신대문자가 있었고 세종대왕이 그 글자를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한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글자를 쓴 빗돌이 세운 때가 한글이 태어난 뒤라고 하니 그 말도 거짓이고 헛소리다.
그리고 또 하나 한자도 우리 글자라고 하는 이들이 있어 그 문제도 따지련다. 한자도 우리 글자라고 하는 이들은 “한자도 천 년이 넘게 우리가 썼으니 우리 글자다”고 말한다. 우리가 썼다고 우리 글자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세계 어디에서도 한자를 중국 글자라고 하지 대한민국 글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한자를 쓰는 것을 보고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나 식민지로 본다. 또 일본도 한자를 쓰지만 한자가 일본 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본인들도 한자가 제 글자라고 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일본인 스스로도 중국 한자를 백제 시대에 왕인박사가 전해 주었다고 알고 있고 일본인들은 왕인을 존경한다. 또 중국인들에게 한자가 우리 글자라고 말해 보라! 웃긴다고 말할 것이다.
나와 오랫동안 한글한자 논쟁을 한 어떤 이는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글자이니 우리 글자라고 말했다. 이제 그는 이 땅을 떠났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말을 믿고 그 소리를 근거로 내세우며 지금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동이족은 우리 겨레만이 아니다. 만주족, 일본족도 동이족이고, 중국 대륙에 가면 동이족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많았다. 요즘 거의 한족으로 변신했지만 이 땅보다 더 넓은 중국 동북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동이족이다. 난 여기서 우리 스스로 우리를 동이족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중국이 한족을 우두머리 민족이고 다른 민족은 변방 민족이라는 중화사상에 우리 스스로 말려드는 꼴이 됨을 밝힌다.
전에 한자혼용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남아무개 교수는 제 조상이 중국에서 왔다고 중국과 국교가 다시 시작된 1990년대에 중국 제 조상 고향에 가서 인사를 하고 그 고을 사람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일이 있다. 그런 이들이 한자가 제 조상이 만든 글자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렇지도 않으면서 괜히 한자도 우리 글자라고 내세우고 싶어서 동이족이란 그런 한족 중심의 용어를 자꾸 내세우고 쓰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는 꼴이며 그들이 하는 동북공정 정책에 말려드는 것이다. 자꾸 그런 소리에 힘과 시간을 빼앗기지 말자. 그런 생각과 노력을 진짜 우리 글자 한글 잘 써서 우리 자주문화를 꽃피우는 데 바치는 게 더 좋다. 학자라면 뚜렷하지 않은 말을 참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한 죄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