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그들 언어의 표기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이 성과를 이끌어낸 훈민정음학회는 벌써 해당 지방정부와 공식 협약을 맺었고, 초등학교에서는 한글로 표기된 교과서가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다른 언어에도 적용하고자 했던 지금까지의 노력이 맺은 최초의 결실이기에 국어단체와 한글학자들이 느끼는 뿌듯함은 더욱 크다. 그러나 제2, 제3의 사례를 계속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한글학회 부설 한글문화협회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이끌며 한글문화관 건립 추진 등 우리말글 살리기를 위해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대로 대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이라고 교육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한글을 소홀히 하는 것에 모순을 느낀 그는 대학생 때인 1968년 국어운동대학생회 조직을 시작으로 한글 지키기에 평생을 바쳐왔다.
중국에서 더 절실히 느낀 한글 우수성 “한글은 우리 겨레가 만든 우수한 글자이고, 우리말을 표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글자입니다. 그러나 찌아찌아족의 사례와 같이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지금, 그 주인인 우리부터 즐겨 쓰고 가꿔야만 한글이 밖에서도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 그는 2006년 말 한국언론재단 지원으로 ‘중국·일본 내 한국어 교육실태’ 점검 작업을 하던 중 우리가 예상하는 정도 이상으로 한글의 인기가 높다는 점을 확인한 뒤 중국으로 진출, 한글 교육에 앞장서 왔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시 최근 더욱 심화된 영어교육 열풍이다. 실제, 한글의 세계화 소식이 놀라울 정도로 우리나라는 영어교육에 빠져있다.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저도 인정하지만 우리 국어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언어는 곧 그 사회의 지식적·문화적 기반인데 이를 알지 못하고 외국어만 강조한다면 우리의 전체 지식수준이 낮아질 뿐 아니라 문화도 지킬 수 없게 될 겁니다.” 최근 2년 여 동안 중국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그가 이번 여름 돌연 귀국길에 오른 것도 바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가장 활발히 추진하는 사업이 바로 한글문화관 건립. “중국에서 한국말과 한국 문화가 결합되어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는데, 정작 우리나라와 국민은 알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죠. 한글문화관은 우리 국민과 온 세계인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서 훌륭한 관광명소로 활용된다면 우리문화 홍보뿐 아니라 관광수입까지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글문화관은 서울 중심에” 현재 문화관광체육부가 맡아 건립을 추진하고 있긴 하지만 순탄한 것만은 않다. 건립 장소와 규모에 대한 이견도 있다. 이 대표 등 한글학자들이 광화문을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문광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방에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우리 도성 가운데 가장 중심이고 500년 조선 도읍지였음에도 궁궐 몇을 제외하면 그렇다할 유물·유적이 없습니다. 현대의 첨단과학이 어우러질 5000년 역사의 한글문화관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다른 어떤 곳보다 훌륭한 문화문명 명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서울 중심권에서 멀어진다면 그 역사성, 상징성, 접근성이 떨어져서 문화재와 관광명소로도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한글 이름 웃음거리 되기도” 그는 우리 국민이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건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해서 한 일에 대해 국수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라는 온갖 비난과 무시로 힘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스스로 지은 한글 이름도 웃음거리가 됐었다. “한글은 참으로 좋은 글자인데 지난 500여 년 동안 우리 스스로 푸대접하고 즐겨 쓰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제 그 훌륭함을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만큼 우리도 그것을 더욱 깨닫고 아껴야 합니다. 저는 지난 43년 동안 한글이 제 대접을 받고 빛나게 하려고 온몸을 바쳤고, 지난 2년 동안 중국에 가서 중국 대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다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 글자를 마음껏 즐겨 쓰고, 자랑합시다.”
문화관 건립 등 실질적인 노력 필요 한글은 어떤 글자보다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까지 적을 수 있는 글자다. 한 언어학자는 24개의 문자조합으로 약 8000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한글이야말로 소리 나는 것은 다 쓸 수 있는 문자라고 했다. 표음문자로서의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은 영어가 따로 발음기호를 둬야 하는 것과 대조하면 더욱 확연해진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는 한글의 이런 우수성을 말해줄 제대로 된 자료 하나 없다. 이대로 대표의 한글문화관 건립 노력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이제는 한글 보급 소식에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실질적인 한글 지키기와 세계화 노력을 위해 더 차분히 생각을 해 봐야 할 때다.
한말글문화협회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 한말글문화협회는 1974년 한글전용을 목표로 세워진 한글학회 부설 한글사랑운동모임이다. 학술연구만으로 한글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한글새소식’을 창간하고 일반인들도 참여해 활발한 운동을 펼쳤다. 초창기 백남준, 안호상, 공병우, 한갑수, 주요한, 정인승, 허웅, 이은상, 정병욱, 이숙종, 곽상훈, 곽종원, 전택부 선생 등 사회 지도층과 한글학자들이 함께 설립했으며, 최근 이대로 대표를 비롯한 뜻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재건됐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1997년 경제위기와 함께 영어 열풍이 불자 우리말과 얼을 살려 겨레와 나라를 지키자는 뜻을 갖고 보통사람들이 만든 국어독립운동 의병단체다. 이대로 대표와 함께 대구 가돌릭대 김수업 전 총장, 중·고 국어교사와 교장을 지낸 김정섭 선생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취재 류화정 기자 beingntim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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