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스티븐스 미국 대사 글

한글빛 2010. 9. 10. 13:28

한글 홍보대사의 한글 사랑

캐슬린 스티븐스(H.E. Kathleen Stephens)

주한미국대사

 

?한글새소식? 머리말에 글을 기고하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2008년 12월 한글학회가 한국어에 대한 저의 노력을 높이 사주셔서 감사하게도 저를 한글 홍보대사로 임명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의 한국어 실력은 많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어설픈 한국어로 글을 쓰려니 걱정이 앞서는군요.

 

수십 년 전 처음 한국어를 접했을 때부터 저는 늘 한글의 간결함과 논리성에 감탄해 왔습니다. 한글 홍보대사로 임명된 후에도 다양한 분들과 만나면서 한글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그 우수성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그 특성과 구조상 한글이 오늘날 같은 인터넷 시대에 알맞고 메시지 전송에도 매우 적합한 문자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한글 사랑은 컴퓨터나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한 외교관이 다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는 그 나라 음식을 먹어 볼 것, 둘째는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습득할 것이었습니다. 음식과 언어를 통해 한 나라의 역사, 문화, 정치 그리고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까지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한글보다 한국 음식과 더 빨리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외국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또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짧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속담들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특히 사자성어는 시적이면서 현명한 가르침을 담고 있지요. 한국인 특유의 해학과 낙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속담이나 사자성어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속담입니다.

 

저는 이 속담을 들을 때마다 ‘한국의 서당개가 나보다 더 똑똑하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가 처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 벌써 35년 전인데 아직 풍월을 읊고 있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한글은 외국인들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한글은 읽기가 쉬워서 외국인도 몇 번 수업을 듣고 나면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같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정말 능숙하게 말하고 읽으려면 아마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할 것이고 주한미국대사관에 있는 모든 직원에게도 한국어를 공부하도록 적극 장려할 것입니다. 한국어를 익힘으로써 한국의 역사, 문화, 음악, 사고방식 그리고 속담까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처럼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한글 홍보대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노래를 직접 부르지는 못하지만 오페라나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처럼, 저는 한국어에 담긴 지혜와 운율을 이해하고 예찬하는 사람으로서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10월, 광화문 광장에서 한글날에 맞춰 서울시가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사관 차원에서 어떻게 함께 축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글 홍보대사로서 명예로운 본분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세종로에 함께 자리한 이웃사촌으로서 아주 뜻깊은 날을 축하드리고 싶어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대형 현수막을 제작했습니다.

 

많은 한국 분들이 이 한글날 현수막을 보고 무척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주한미국대사관의 모든 직원들은 기쁘고 흐뭇했습니다. 대사관 건물에 걸린 현수막을 배경으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들의 모습에 마음이 저절로 뿌듯해졌습니다. 한글 홍보대사로서 그리고 주한미국대사로서 대사관 직원들과 제가 한국어의 우수성과 한글의 독창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