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미국 대사와 한국 대통령 견주어 보기

한글빛 2010. 10. 31. 16:09

광화문의 ‘門化光’과 미 대사관의 ‘한글날’ 축하 글
이제 한글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 보물인지 깨닫자
 
이대로
▲ 한글날 전에 미국 대사관 건물에 걸린 한글날 축하 펼침막이 10월 28일까지 걸렸었다.     ©이대로

한글날이 들어 있는 10월도 저물고 있다. 지난해도 그랬는데 미국 대사관은 한글날을 맞이해 축하 글을 크게 써서 대사관 건물에 걸어 놨다. 나는 광화문 근처에 있는 한글학회에 날마다 나가면서 세종대왕 동상과 미국 대사관 한글날 축하 글, 광화문 현판 ‘門化光’ 글씨를 한눈에 바라본다. 그런데 세종대왕 동상과 미국 대사관의 한글날 축하 글은 진짜 잘 어울리는데 광화문의 한자 현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마다 “외국 대사보다 못한 이 나라의 대통령! 미국 대사도 저렇게 축하하는데 한국 대통령은 모른 체 하다니...”하면서 한숨을 내쉬곤 했다.

세종로 광화문 앞 넓은 마당에 세종임금 동상을 세운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그 동상을 세운 뒤 우리 국민은 말할 거 없고, 다른 나라 관광객도 많이 찾아와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한글 동상 아래 벽에 둘러 써 있는 한글 글꼴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나는 지난해 국회에서 스티븐스 미국 대사가 “세계 으뜸 글자를 만든 세종대왕 동상이 미국 대사관 앞에 세워지니 좋았다. 한글날에 축하 글을 내 거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라고 내 질문에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올 한글날에도 그 축하 글을 건물에 크게 걸고 10월이 다 갈 때까지 걸어 놨었다.

이렇게 미국 대사도 들어 내놓고 한글과 세종대왕을 칭찬하는데, 우리 대통령은 한글날에 축하 말씀 한마디 없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글날에 한글을 사랑하자는 담화문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그 뒤 대통령들은 그런 말은 안하고 오히려 한글을 짓밟거나 영어나 섬기는 짓이나 열심히 했다. 올해 광복절엔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문인 광화문에 걸려있던 한글 현판 ‘광화문’을 떼고 ‘門化光’이란 한자 현판을 달았다. 그것도 나라 잃은 100돌을 맞이해 그 현판을 걸고 바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그 비운의 한자 현판 글씨를 본떠서 말이다. 중국은 자꾸 커져서 동북공정에 한글까지 넘보는데 말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그래서 한글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게 아니라면 한글날에 대통령께서 “한글은 우리 보배요 자랑이다. 한글을 사랑하고 즐겨 써서 나라를 일으키자.”는 축하 말 한마디만 해달라고 청와대 쪽에 말을 했건만 꿀 먹은 벙어리였다. 미국 대사도 떳떳하게 한글날 축하 글을 건물에 한 달씩이나 걸어놓는데 무엇이 부끄럽고 자신이 없는지 말 한마디 없었다. 나는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힘이 드는 일도 아니다. 전에 그런 축하 글을 발표한 대통령들이 있었다.”라고 까지 전했었다.

어제 광화문에 걸린 한글 현판을 떼고 한자 현판을 달게 한 전 현직 문화재청장을 종로경찰서에 고발한 한 국민이 있어 격려차 나갔다가 광화문 광장까지 걸어와 둘러보니 미국 대사관에 걸려 있던 한글날 축하 펼침막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께까지 세종대왕 동상과 잘 어울려서 좋았는데, 세종대왕 등 뒤에 ‘門化光’ 한자 현판만 보이니 몹시 아쉽고 서글펐다. 정치나 나라 일을 하는 이들은 큰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세종대왕을 거울삼아 결정하기 바란다. 그러면 자신은 말할 거 없고 나라에도 아주 좋을 것이다. 중국 대사관에 한글날 축하 글이 걸려야 우리 대통령과 공무원들이 무언가 깨달을 것인가!

지난 한글날에 한글단체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광화문에 한글 현판으로 바꿔달 것을 요구했다.
 
▲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에 정부는 중국식으로 ‘門化光’이란 한자 현판을 달았다.     ©이대로

 
 
<이대로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0/10/31 [13:49]  최종편집: ⓒ 사람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