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토박이말을 살려 쓸 때이다
이 대로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회장)
1. 머리말
지난 50여 년 동안 나는 우리가 어떻게 한자로부터 해방되고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만 적는 말글살이를 할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것이 우리말이 살고 우리 겨레가 사는 길이라고 믿고 한자를 같이 써야 한다는 이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 싸움은 120여 년 전 대한제국 때 주시경, 서재필, 헐버트 선생들이 독립신문을 만들고 정부가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을 ‘국문’이라고 부르면서 나라 글자로 인정하고 살려 쓰려고 애쓰면서 시작된 싸움이다. 그 때부터 지난 100여 년 동안 수많은 분들이 애썼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주시경 선생이 한글을 가르치고 갈고 닦은 일과 일본 식민지 때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조선어학회가 한 일이 매우 두드려진다.
조선어학회는 일본 식민지 때에 한글을 반포한 날을 한글날이라고 정하고 기리면서 한글맞춤법, 표준말, 로마자표기법,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 1945년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하고 물러난 뒤에 우리 말글로 배움 책을 만들고 공문서를 쓸 수 있는 밑바탕을 닦아주었다. 그 때 그 분들이 그렇게 안 했다면 조선시대처럼 한문을 쓰거나 일본 식민지 때 길든 일본 말글을 써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광복 뒤 미국 군정 때에도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많은 분들이 한글을 널리 알리고 쓰게 하려고 애썼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오히려 일본 말글을 아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배움 책을 한글로 만들었고, 대한민국 건국 뒤에는 조선어학회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나라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런데 세계 역사를 보면 언제나 새롭게 나가려면 그걸 가로막는 무리들이 있어 다투고 싸우게 된다.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 때에는 최만리 무리들이 가로막았고, 왜정 때엔 안확과 박승빈들이 우리 글자를 ‘정음’이라 부르며 ‘조선어연구회’를 만들고 우리 글자를 ‘한글’이라 부르며 우리말을 한글로만 적자는 주시경과 주시경의 제자들이 만든 조선어학회에 맞섰다. 대한민국 때에는 최현배를 중심으로 우리말을 한글로만 쓰자는 한글학회에 이희승을 중심으로 일본처럼 한자말은 한자로 쓰자는 ‘어문회’가 나타나 맞서 싸우게 된다.
그러나 우리말을 한글로만 적는 말글살이가 가장 좋고 한자보다 한글이 더 훌륭한 글자이기에 한글을 좋아하는 국민이 한글학회 쪽을 도우면서 한자와 한글 싸움은 한글 쪽이 이기게 된다. 그 싸움에서 1967년에 태어난 국어운동대학생회는 선봉장이었고 나는 그 학생운동으로 시작해서 오늘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까지 시민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분들과 한글나라를 만드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래서 한자혼용을 고집하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같은 신문들도 한글로만 신문을 만들고, 한자로 쓰던 국회 상징보람 글씨도 한글로 바뀌면서 이제 한글나라가 다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가만히 앉아서 된 일이 아니다. 참말로 치열하게 싸워서 얻은 것이다. 그러나 대한제국 때부터 설친 친일 한자혼용 세력 찌꺼기가 초등학교 배움 책을 한자를 함께 써야 한다고 떠들어서 시끄럽다.
그들은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 땅을 빼앗고 우리말과 얼까지 빼앗은 뒤 일본 말과 얼을 심어놨는데 광복 70년이 되었어도 아직 그 일본 한자말과 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말과 우리 얼을 살리려면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과 일본 말투부터 버리고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써야 한다.
그렇게 우리 토박이말을 살리고 빛내면 저절로 새로 생긴 영어 섬기기 세력까지 사라질 것이다. 한글과 한자는 태어나고 만든 짜임새와 그 쓰임새가 다르고 한글이 한자와 견줄 수 없도록 훌륭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먹기와 따라서 한자와 싸움은 빨리 끝날 것이다. 또 한글이 로마자보다도 더 훌륭한 소리글자이기에 또 그렇다.
2. 토박이말을 살리려 애쓴 사람과 일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는 이들은 우리말 가운데 한자말이 70%이기에 한자를 배우고 쓰지 않으면 우리 말글살이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 글자가 없어서 중국 한문을 써왔고 105년 전에 일본 식민가 되어 한자를 섞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본말을 국어로 배우고 썼기에 한자말이 많은 것은 참이지만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고 쓰이는 한자말은 50%도 안 될 것이다.
광복 뒤에 국어사전을 만들면서 일본 식민지 교육을 받은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 우리가 쓰지 않아도 되는 일본 한자말은 많이 넣고 우리 토박이말은 오히려 넣지 않아서 그런 모습이 되었다. 이제라도 우리말 사전에서 그런 한자말을 빼 버리고 지방에서 쓰는 지방말까지 우리 토박이말을 많이 넣고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면 우리 토박이말이 70%가 될 것이다.
이제 처음 우리 글자인 한글을 쓰기 시작한 대한제국시대부터, 일본 식민지 시대와 대한민국 시대까지 우리 토박이말을 애써 찾아서 쓰고 만들어 쓰려는 일과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일들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가. 헐버트 선생과 그가 한글로만 쓴 배움책 ‘사민필지’
헐버트는 1886년(고종 23년)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서양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의 영어 선생으로 온 미국인이다. 그 전에 우리 교육기관은 한자와 한문으로 교육하는 성균관, 서원, 서당들이 있었으나 고종은 서양 문물이 밀려오는 개화기를 맞이해서 영어나 다른 외국말과 외국 문화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기에 고급관리 아들딸과 초급 관리에게 그 교육을 하려고 새 교육기관을 세운 것이다. 그 때엔 ‘학교’라는 말도 없어 ‘공원:公院’이라고 했다. 이완용도 육영공원 학생이었다.
그런데 그 헐버트가 이 나라에 와 보니 영어를 적는 로마자보다도 더 훌륭한 조선 글자가 있는데 이 제 글자는 안 쓰고 배우고 쓰지 힘든 한문으로 말글살이를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3년 만인 1889년에 그 글자로 ‘사민필지 [士民必知]’란 세계 사회지리책을 낸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은 그 때 쓰는 입말을 그대로 한글로 적었기에 오늘날 ‘지구:地球’라고 쓰는 말을 ‘땅덩이’ 라고 하듯이 우리 토박이말이 많이 나온다. 그가 우리 말글을 우습게 알며 쓰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서 이 책을 썼다는 ‘사민필지’ 창간사를 옮긴다.
사민필지(최초 한글 배움책) 서문 (옛 글자를 현대 글로 번역)
천하 형세가 옛날과 지금이 크게 같지 아니하여 전에는 각국이 각각 본지방을 지키고 본국 풍속만 따르더니 지금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천하만국이 언약을 서로 믿고 사람과 물건과 풍속이 서로 통하기를 마치 한집안과 같으니 이는 지금 천하 형세의 고치지 못할 일이라.
이 고치지 못할 일이 있는 즉 각국이 전과 같이 본국 글자와 사적만 공부함으로는 천하각국 풍습을 어찌 알며 알지 못하면 서로 교접하는 사이에 마땅치 못하고 인정을 통함에 거리낌이 있을 것이오. 거리낌이 있으면 정의가 서로 두텁지 못할지니 그런 즉 불가불 이전에 공부하던 학업 외에 각국 이름, 지방, 폭원, 산천, 산야, 국경, 국세, 재화, 군사, 풍속, 학업과 도학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고로 대저 각국은 남녀를 막론하고 칠, 팔세가 되면 천하 각국 지도와 풍속을 가르친 후에 다른 공부를 시작하니 천하의 산천, 수륙과 각국 풍속,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조선도 불가불 이와 갖게 한 연후에야 외국 교접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또 생각건대 중국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 언문은 본국 글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수이 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오. 이러므로 한 외국인이 조선말과 언문법에 익숙치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서 천하각국 지도와 목견한 풍기를 대강 기록한다. 땅덩이와 풍우박뢰의 어떠함을 먼저 차례로 각국을 말씀하니 자세히 보시면 각국 일을 대충은 알 것이요. 또 외국교접에 적이 긴요하게 될 듯하니 말씀의 잘못됨과 언문의 서투른 것은 용서하시고 이야기만 보시기를 그윽히 바라옵나이다.
조선 육영공원 교사 헐버트 씀
사민필지 머리글 찍그림
나. 주시경 선생과 토박이말 살리기
주시경 선생은 1896년 헐버트 서재필 박사와 함께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고 그 신문사 안에 국문동식회라는 우리 말글 연구모임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우리말을 한글로 쓰는 세상을 만들려고 무척 애쓴 분이다. 상동교회에 조선어강습원을 만들고 우리 말글을 가르쳤으며 1908년에는 그의 제자들과 지금 한글학회인 국어연구학회를 만들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 책 보따리를 들고 여러 학교를 바쁘게 다니며 한글을 가르치니 ‘주보따리’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1910년에 나라를 빼앗기니 그는 우리 글자를 국문(나라글자)이라고 할 수 없게 되니 우리 토박이말로 ‘한글’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 부르고, 우리말은 ‘한말’이라고 했다. 국어연구학회는 ‘배달말글몯음’이라고 바꾸었다가 ‘한글모’로 바꾸었으며, 조선어강습원은 ‘한글배곧’이라고 바꾸었다. 자신의 한자 이름도 버리고 ‘한힌샘’이라고 지어 부르고, 자식들 이름도 한자 ‘산’을 토박이말 ‘메’로 바꾸어 큰 딸 ‘송산’은 ‘솔메’로, 큰아들 ‘삼산’은 ‘세메’, 둘째 아들 ‘춘산’은 ‘봄메’, 셋째 아들 ‘왕산’은 ‘임메’라고 한말글로 바꾸었다. 또 오늘날 ‘사전’이라고 하는 말을 ‘말모이’라는 이름으로 만들다가 39살 젊은 나이에 급체로 돌아가셨는데 일제에 독살을 당했다는 말도 있다. ‘학교’가 아닌 ‘배곧’이라 한 것이 참 좋다.
왼쪽부터 독립신문과 한글모죽보기 겉장, 주시경이 그 제자 최현배에게 준 졸업장 찍그림.
졸업장이란 말을 ‘익힘에 주는 글’이라고 쓰고 국문연구소 연혁을 ‘한글모 죽보기’라고 쓴 주시경 선생의 뜻과 삶은 얼마나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1910년에 보성학교 회보에 쓴 주시경 선생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 분이 이루지 못한 토박이말 살리기를 오늘 우리가 해 낼 것을 다짐해보자.
1910년에 주시경 선생님이 쓴 글, ‘한나라말’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 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닦아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어 나라도 점점 내리어 가나니라.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 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들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들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들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 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위에야 되나니라.
나는 헐버트, 주시경 선생 정신을 살려서 토박이말과 한글을 살리자고 요즘 두 분 부조상을 세웠다.
다. 그 밖에 일제 때 토박이말 살린 일과 사람.
1920년 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김두봉이 지은 조선말본과 중국에서 돌아가신 백범 김구 선생 부인 빗돌 글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가르쳐준다. 맞춤법은 오늘날과 다르지만 “신문각 출판, 문법”이라고 안 하고 “김두봉 짓음. 조선 말본. 서울 새글집 박음”이라고 토박이말로 쓴 것이 좋고 그 안 문법 용어도 토박이말로 이름씨, 그림씨 들로 되어 있어서 좋다. 최준례 묘비에서도 “탄생이라는 한자말이 아니고 ‘남’이라고 하고 묻엄, 세움이란 토박이말을 쓴 것이 좋다.”
왼쪽은 1920년대 중국에 세운 최준례 여사 빗돌, 오른쪽 김두봉의 조선말본.
라. 1948년 이기인 교수가 만든 “새 사리갈말 말광”
왼쪽은 ‘새 사라갈말 말광’ 겉장, 오른쪽은 그 말광 속 24쪽 찍그림. ‘위’를 ‘밥통’이라고 했다.
1945년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되니 조선어학회 최현배와 여러분이 일제가 못 쓰게 한 우리말을 도로 찾아 한글로 쓰자는 운동을 했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 국민으로 태어나 일본 식민지 교육을 착실하게 받은 경성제대 출신 이숭녕, 고려대 초대 총장 현승종 들은 발 벗고 반대운동을 한다. 그 때 서울사대 생물학과 이기인 교수는 일본말과 영어로 된 5000 여 생물학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거나 새로 만들어 “새 사리갈말 말광”이란 생물학술영어사전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사전’을 ‘말광’이라고 했으며, ‘학술용어’를 ’갈말‘이라고 바꾸고 ’위‘를 ’밥통‘이라고 했다. 그 때 ’건널목‘이란 토박이말도 만들고 많은 토박이말을 찾아 쓴다. 그 때 모든 학자와 정치인들이 이 분처럼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말로 가르쳤다면 지금 이 나라는 몰라보게 발전했을 것이다. 이 말광 머리말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하신 말씀과 사민필지 머리글과, 독립신문 첫 논설, 주시경 선생이 쓴 ’한나라말‘과 뜻과 생각이 통하는 글로서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을 준다.
이기인 교수는 조선어학회 사건 때 수난당한 33명 가운데 한 분인 신현모 선생의 사위인데 6.25 때 북으로 끌려가서 조선어학회 이극로와 북에서 활동한다.
"새 사리갈말 말광" 머리말
세상은 바뀌는 것이니 이 나라도 5천년의 긴 동안에 별별 이이 일어나고 사라졌다. 이제 민주주의 세상이 오기는 하였으나 자유스러운 민주문화를 일으켜 보자는 데 훼방을 놓고 있는 딴 나라의 한문글자와 일본말은 아직도 내좇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한문글자나 일본말을 가지고 우리말 우리글을 누르려는 것은 딴 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것을 배워 쓰던 사람들인 것이니 시대를 모르고 저들만 편하기 위하여 저도 모르는 동안에 우리를 누르고 잡아먹으려던 나라의 앞잡이 노릇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임자 있는 딴 나라의 글과 말은 독하고 무서운 것이다.
“딴 나라의 글과 말은 제 나라의 글과 말이 꽤 터가 잡힌 다음이면 어느만큼 이용은 할지언정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배우는데 먼저 딴 나라의 그것을 배워야 되게 하여 제 나라의 민주문화를 일으키는데 큰 거리낌이 되게 하는 것은 안 되는 말이다. 제 나라의 말과 글을 붙들고 살리려는 것은 그 겨레가 살아보자는 첫걸음이며 가장 거룩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말과 글이 없어진 겨레는 사람의 넋까지 흩어져 말하고 마는 까닭이다.“
민주주의란 말을 사랑하고 노래하는 것은 참다운 민주주의 나라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참다운 민주주의 나라가 되려면 모든 사람이 다 배워 제 힘으로 옳고 그른 것을 알고 말하게 되어야 한다. 쉬운 한글과 우리말로 글소경을 빨리 없애 버릴수록 참다운 민주주의의 굳센 나라는 빨리 올 것이다.
이왕에 한문글자는 쓰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 민족문화를 빨리 일으키는데 좋고 옳은 일이라면 한걸음 나아가 ‘조족지혈’보다 ‘새발의 피’, ‘아전인수’보다 ‘제 논에 물대기’, ‘생존경쟁’보다 ‘살기다툼’, ‘돌연변이’보다 ‘갑작다름’, ‘부유’보다 ‘하루살이’, ‘동물’보다 ‘옮사리’ 따위 말이 훨씬 더 민주주의 나라의 말이 아니랴!
그러므로 적어도 모아된 말(合成語)이 한문글자부터 알아야 그 뜻을 알게 된 말이면 우리말로 그 뜻을 풀어가는 것이 급하고 마땅한 일이매 이것을 깊이 생각도 아니 하고 경솔하게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은 뜻 있는 문화인(文化人)으로서는 못할 일이다.
‘사리갈(生物學)이 과연 우리가 다 배워야 할 모든 배월(科學)의 기초라면 갈말은 우리말로 풀어쓰는 것이 가장 좋고 빠른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우리들은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으로 “사리갈 가르치는 모임(生物敎育會)”에서 한결같은 원칙 밑에서 사리갈말(生物學術語)을 골라 추렸다.
이 책은 그것은 엮어 내며 사리갈말 아닌 것도 조금 넣어 쓰는 분들은 편하도록 하였다. 이 책을 낼 지음에 갈말을 골라 추리기에 많은 힘을 쓰신 대학, 중학, 소학의 각 학교 생물 선생님네와 그 밖에 좋은 가르침을 아끼지 아니하신 여러 조선어학자, 수학자, 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약학자, 심리학자, 농학자들과 원고 다듬기에 힘써준 “공 정, 이원구 신광순” 제군 그리고 영양사 권혁찬님과 종업원 여러분께 고마운 말을 드린다.
4281년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사대 이기인 씀
라. 광복 뒤에 토박이말로 이름을 지은 분들과 한글이름짓기 운동
왼쪽은 1967년 서울대 우리말이름 자랑하기에서 상을 받는 금난새, 왼쪽은 1968년 한글날에 국어운동대학생회 회원들이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사랑을 외치고 박은 찍그림이다.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광복 뒤에 사람 이름도 우리말로 지은 분들이 있다. 깨어있는 선각자, 애국자들이 그랬다. 음악가 금수현님은 아들 이름을 금난새로, 사회운동가 김철님은 아들 이름을 김한길로, 불교철학자 정종님은 아들 이름을 정어지로로 지었다. 이름난 음악 지휘자인 ‘금난새’,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한길’, 대학 교수 ‘정어리루’ 같은 사람의 이름은 우리말 이름이다.
내 대학 스승인 정철 교수님은 광복 뒤 당신의 아들딸 이름을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리려니 면서기가 받아주지 않아서 도청까지 가서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따지고 없다는 답변을 받아내어 우리 말글로 호적에 올리게 했다고 한다. 뜨거운 나라사랑, 한글사랑 정신을 실천한 선구자 개척자였다. 금수현 선생은 “따옴표, 도돌이표” 같은 음악 용어를 우리말로 만든 분이다.
1967년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는 ‘고운이름 자랑하기’ 행사를 하면서 5000년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말과 글자로 이름을 짓는 바람을 일으켰다. ‘김유신’처럼 세 글자로 한자 이름을 짓는 것은 1300여 년 전 신라가 중국 당나라 세력을 끌어들여서 백제와 고구려를 쓰러트리고 중국식 제도와 이름을 지으면서 뿌리내린 것이 지금까지 왔다. ‘왕’이라는 이름도 지증왕이 처음 썼는데 그 전에는 “마립간, 거서간”처럼 우리식 이름이었고, 땅이름도 “달구벌, 서라벌”처럼 우리 이름이었고, 사람이름도 “박혁거세 연개소문”처럼 우리식 이름이었다.
3. 마무리 말
지금까지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려고 애쓴 흔적 몇 가지를 살펴봤다. 지난날 우리말을 살려서 쓰려고 애쓴 일과 사람들이 있었지만 중국 한자나 일본 한자말, 그리고 미국말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이 그 빛이 나지 못했다. “아(我)에게 자각이 있으면 비아(非我)도 아화(我化)하고 아에게 자각이 없으면 아도 비아화한다"라는 한자말투로 글을 쓰면서 우리말을 한글로 쓰자는 주시경 세력에 맞선 ‘안확’과 같은 이를 따르는 한자패들이 날 뛰는 바람에 토박이말이 힘을 쓰지 못했다.
배움책은 말할 것이 없고 신문이나 공문서에서 일본 한자말을 몰아내고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고, 사람이름은 말할 것이 없고 상품이나 회사 이름, 그리고 집 이름을 우리말로 지어야겠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말로 이름을 지으려고도 안 했지만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 연구와 노력도 안 했다. 시와 소설, 노랫말도 우리말로 짓고 애들에게 가르쳐야겠다.
나는 인터넷통신을 ‘누리통신’이라고 부르고 ‘네티즌’이란 영어가 싫어서 ‘누리꾼’이라고 지어 부르자고 한 일이 있다. 이제 ‘누리꾼’은 많은 사람이 쓰게 되어 말광에도 올라갔다. 그렇게 애쓰면 된다. 없는 길도 많은 사람이 가면 길이 된다. 나는 요즘에 누리통신에서 ‘사진’을 ‘찍그림’, ‘동영상’을 ‘움직그림’, ‘에스컬레이터’는 ‘움직계단’이라고 새로 만들어 쓰고 있는데 내 뜻벗(동지)들이 따라서 쓰서 널리 퍼지고 있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는 삼국시대부터 꿈꾸고 애쓴 우리겨레의 1500년 된 소원이고 꿈이다. 오늘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우리말로학문하기, 토박이말바라기 모임과 같은 모임이 많이 활동하고 잘 되길 간절히 바라고 빈다. 학교 선생님들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쓰면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면 토박이말 세상이 빨리 될 것이다. 다만 거부반응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진주 강연 - 토박이말이 살아야 우리말이 산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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