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스크랩] 14대 국회에서의 한글 사랑 운동 -1993년

한글빛 2016. 11. 7. 00:38

14대 국회에서의 한글 사랑 운동

 

                                                                                                  이 대로   한말글 사랑 겨레 모임 대표

 

제14대 국회가 문을 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문을 닫을 때가 되었고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중에서 입법부인 국회가 우리 ‘한글 전용법’(법률 제6호)을 가장 지키지 않고 있다. 때문에 글쓴이는 국회 의원과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 한글의 우수성과 그 중요성을 알리고 ‘한글 전용법’을 잘 지키도록 일깨워 주기 위해서 원 광호(국회 의원) 님, 안 호상(한글 문화단체 모두모임 회장) 님 등 여러 분들과 지난 몇 년간 국회에 출근하다시피 한 일이 있었다. 그러한 마당에 제14대 국회가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아쉽고 허전하다. 그렇게 열심히 뛰었는데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남다른 감회가 든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고 많은 분들이 애썼던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은 다음 한글 사랑 활동에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 4년 동안 국회에서 한글 사랑 운동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간단히 적어 보고자 한 것이다.

 

1. 여기가 중국 국회인가?

 

글쓴이는 4년 전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 처음 가 보았다. 그런데 건물은 크고 우람한데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니 믿음이 가지 않았고 온통 한자투성이라 낯설어 보이고 싸늘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일반 국민들을 위한 국회 같지도 않고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국회같이 보였다. 나뿐이 아니라 함께 간 한글 문화단체 다른 분들께서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국회 의사당에 들어서자마자 건물 준공 기념문이 토씨만 빼고 새까만 한자로 뒤덮여 있고 안내문과 국회 의원들의 방 문패들이 모두 한자로 된 것을 보고, 오 동춘(외솔회 사무국장) 님 등은 실망스러워 “여기가 중국 국회인가!”라고 비통하게 말씀하기도 하였다. ‘주차 금지’라는 팻말도 한자로 ‘駐車禁止’라고 써 있고 ‘입구’는 ‘入口’로, ‘출구’는 ‘出口’로 써 있는 것부터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다른 국가 기관인 종합 청사나 대법원에 가면 나부끼는 정부 기관 깃발의 글자가 한글로 ‘정부’와 ‘법원’이라 깨끗하게 써 있고, 안내문과 각 방의 문패도 한글로 써 있는 것에 비해, 국회 의원의 보〔배지에 써 있는 글자는 ‘國’ 자인지 ‘或’ 자인지 알 수도 없게 돼 있어서 행정부나 사법부에 비해 뒤떨어진 국가 기관으로 보였다.

 

국회 바깥 세상은 21세기 민주주의 한글 시대를 바라보는데 국회 안은 19세기 조선 시대나 일제 식민지 한자 숭배 시대였다. 말글 문제에 있어 겉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회 의원과 국회 사무 직원들 생각 또한 고리타분한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란 느낌을 주었다. 일찍이 50여 년 전 한글을 발전시켜서 튼튼한 민족 자주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한글 전용법’을 만든 국회가 그 법을 가장 지키지 않고 있고 그런 법이 있는지, 또 그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국회 의원과 직원들이 많았다. 국회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스스로 개혁과 개선을 하지 않아서, 국민들로부터 국회 의원이 가장 못 믿을 직업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 한 마디로 국회는 한글의 황무지였다.

 

2. 국회 의원들의 한글 이름패를 만들어 주다.

 

한글 문화단체 모두모임과 또 다른 많은 국민들이 제14대 국회가 개원하기에 앞서 국회 의원 이름패를 한글로 써 줄 것을 건의했으나 국회는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국어순화 추진회 조찬 모임에서, 국회에서의 원 광호 의원의 한글 사랑 실천 운동을 돕기 위해 국회 의원들의 이름패를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 주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 뒤 한글 문화단체 모두모임 이사회에서 그 일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한글 학회, 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 국어순화 추진회 등 단체와 전국에서 국민학생을 비롯한 뜻있는 국민들이 성금 600만 원을 모아 국회 의원 299명의 한글 이름패를 만들었다. 그 다음 국회 의장에게 기증 의사를 전달하고 한글 이름패를 사용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국회사무처에서는 받을 수도 사용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국회와 연락을 맡은 글쓴이는 만약 한글 이름패를 쓰지 않겠다면 한글날 즈음 한글 문화단체 안 호상 회장님 등 원로 회원들과 학생들이 합세해서 한글 이름패를 하나씩 들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전화로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결국 국회 사무총장 이상의 대표가 나와 정중히 받는다면 안 호상 회장님 등 대표 10여 명만 모시고 가겠노라고 의사부국장과 합의하고 1992년 10월 7일 국회로 갔다. 그런데 우리들이 타고 간 승용차 짐칸까지 검색하는 등 경비가 삼엄했다. 우리들은 이름패를 가지고 들어가지도 못하게 할 것이라 미리 예상하고 수주일 전에 라면 상자에 넣어 원 광호 의원실에 갖다 놓았기 때문에 별 탈 없이 국회 의사당 앞 분수대 앞에서 전달식을 가질 수 있었다.  국회 의장이 나와 받기를 바랐으나 과장급 직원들과 경비원들이 나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기를 거부하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 의원 가운데 한 분인 원 광호 의원에게 안 호상 회장이 전달했다.

이름패를 미리 갖다 놓은 것도, 원 광호 의원에게 전달한 것도 미리 글쓴이와 원 의원이 짜 놓은 각본대로 했던 일이다.

 

전달식이 끝나고 안 호상 회장님 등은 국회 의장을 만나기 위해 의장실로 가시고 글쓴이는 원 의원 비서들과 함께 이름패를 원 의원 사무실로 옮기는데 경비원들이 따라오면서 “우리들이 이름패 반입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켰는데 언제 어떻게 가져왔습니까?”라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말했다. 글쓴이는 “이 일은 세종 대왕을 비롯한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과 하느님이 하는 일이라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큰소리 쳤다. 한국인이 한국의 글자인 한글로 한국 국회 의원들의 이름패를 만들어 기증하는데 일제 때 독립 자금 전달하는 식으로 긴장 속에 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펐고, 후손들이나 외국인이 알면 민족의 큰 부끄러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이번 일이 한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기에 국회 출입 기자실에 미리 보도 의뢰를 했으나 그들은 한 사람도 안 나오고 영등포 경찰서 출입 기자들이 뒤늦게 달려와 취재하여 ‘국회 한글 이름패 거부’라고 세상에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아마 전투경찰이 배치되고 하니 경찰서 출입 기자들이 왔던가 보다.

 

3. 한글 이름패를 사용해 주고 한글 전용법의 단서 조항을 빼 주십시오

 

사실 ‘한글 전용법’과 ‘정부 공문서 규정’ 정신에 입각해 볼 때 국회도 무조건 한글 이름패를 사용해야 되는데, 국회 사무처에서 한자 이름패 사용은 오랜 관행이라며 듣지 않고 국회 의원들의 결의가 있으면 한자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겠다고 해서, 한글 문화단체에서는 원 광호 의원을 통해서 청원서를 내고 국회 의원들을 직접 만나서 설득 활동을 했다. 국회 활동 섭외 위원으로 김 계곤・김 승곤・오 동춘・최 기호 교수님 들과, 문 제안 사무총장님과 글쓴이가 선정되어 1993년 여름은 국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국회 의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원 광호 의원은 따로 국회 의원들을 상대로 한글 이름패 사용 찬반 여론 조사를 하고 개별 접촉 설득 활동을 했다. 또한 한글 문화단체 모두모임 안 호상 회장, 전 택부 부회장, 한글 학회 허 웅 회장, 외솔회 김 석득 회장, 국어순화 추진회 주 영하 회장, 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 박 종국 회장 등은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국회 의장과 부의장, 사무총장을 만나 우리 뜻을 전하기 위해 몇 번이나 국회를 방문했다. 그러나 한글 이름패 사용 청원은 국회 운영 위원회에서 몇 번 소위원회만 열고 결의 없이 제14대 국회가 폐회하게 되어 자동 폐기될 것이다. ‘한글 전용법’ 개정 청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 한글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만든 한글 이름패는 지금도 원 광호 의원실에 그냥 쌓여 있다.

 

그러나 뒷날 한글 역사 박물관에 대한민국 제14대 국회가 얼마나 자기 나라 글인 한글을 천대했는지 또 우리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려 주는 증거물로 수천 수만 년까지 길이 기념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4. 원 광호 의원의 눈물겨운 한글 사랑 운동

 

제14대 국회의 한글 사랑 운동은 원 광호 의원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한글 전용법’(법률 제6호)의 단서 조항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용한다.”를 떼어 달라는 법 개정 청원과 ‘국회 의원 한글 이름패 사용 청원’을 원 의원이 소개했다. 그리고 원 의원은 국회가 만들어 놓은 자신의 한자 이름패를 떼어 내고 스스로 한글 이름패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실제 몸으로 한글 사랑의 실천을 보이면서 국회와 국민에게 한글의 우수함과 한글을 써야 할 필요성을 알리고 한글 전용법을 지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투쟁했다.

 

원 의원은 제14대 국회가 문을 열기 전부터 자신의 이름패는 물론 모든 국회 의원의 이름패를 한글로 써 줄 것을 국회 사무처에 요구했으나 그들은 한자를 써 온 것이 관행이라며 들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원 의원은 국회가 한글을 쓰지 않는 것은 ‘한글 전용법’과 ‘정부 공문서 규정’ 등에 위배되는 행위로서 법과 규정을 무시하고 국민의 불신을 사는 일이니 꼭 시정하라고 다시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래도 들어 주지 않자, 자신만이라도 그 법을 지키고 한글 사랑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의원 회관 자신의 방 문패와 의사당의 이름패 들을 모두 한글 이름패로 바꿔 버렸다. 그랬더니 국회 사무처에서 그 한글 이름패를 떼어 내고 다시 한자로 바꿔 놓았다. 이렇게 바꿔 달기를 거듭하던 어느 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사국장이 원 의원에게 거세게 항의하므로 원 의원과 이 해찬, 조 홍규 의원들이 의사국장에게 호통을 치게 되어 회의장이 소란스럽게 되었고, 그 모습이 신문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그 일로 한글 문화단체에서는 항의 방문까지 하고 많은 국민들도 국회에 항의했다. 그 다음부터 원 의원의 한글 이름패는 버젓하게 자리잡게 되었고 아무도 탓하지 못하게 되었다. 참으로 피나는 투쟁의 결과였으며 원 의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회에 자신의 이름패를 한글로 바꾼 원 의원은 그 때 소속 정당인 국민당 당사의 문패・문서들을 한글로 쓰게 하고 한자 숭배자인 정 주영 대표까지 한글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또한, 한국 바른말 연구원 회원들과 함께 한국 은행을 찾아가 50여 년 달려 있던 한국 은행의 한자 현판을 한글 현판으로 바꿔 달게 했으며, 포항 제철 등 국정 감사 대상 업체들에도 한글 사랑의 씨앗을 뿌렸다. 어느 감사 대상 기관에서는 감사 전날 뒤늦게 원 광호 의원의 한글 사랑 운동 소식을 알고 감사장의 한자 이름패들을 밤새 한글로 바꾸는 소동까지 벌였다고 한다. 한글 문화단체 대표들과 함께 이 만섭 국회 의장을 만나 국회 소집 공고문을 한글로 쓰도록 한 일은 신문 보도를 통해 모두 아실 줄 안다.

 

원 의원은 국회 안에서 ‘한글 전도사’, ‘한글 박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글 사랑 실천가로 인정 받고 성과도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눈물겹게 힘들고 모욕적인 일들이 많았다.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는 만주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외로움도 느꼈다. 글쓴이는 함께 활동을 하면서 너무 힘들고 답답해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어느 날 의원 회관에서 단 둘이 만났는데 “이 선생! 나 어제 모 의원한테 크게 망신당했소! 국회 의원이란 직업이 싫어지는구려!” 하며 힘들어 했다. 1년 넘게 열심히 뛰어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 뜻대로 일이 되지 않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대 의원들을 만나 설득을 하였다. 한번은 어느 법조계 출신 한자파 의원에게 본회의를 마치고 의원 회관으로 걸어오면서 설득하기 위해 말을 거니까 “국회 의원이 할 일 없어 한글 운동이나 하고 체통도 없이 길에서 말을 거느냐!”며 큰소리로 면박을 주더라며 그 땐 한글 때문에 참았는데 지금까지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가슴아파 했다. 판‧검사로서 군사 정권의 시녀 노릇해서 국회 의원이 된 그의 눈에는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원 의원의 한글 운동이 우습게 보였던가 보다.

 

그 때 원 의원은 되지 못한 모 의원에게 단순히 면박 당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충정을 알아 주지 않는 국회의 참담한 한글 경시 현상에 더 가슴아파 했던 것이다. 글쓴이는 그 때 원 의원께 “머지않아 성과가 있을 것이고 먼 뒷날 후손들이 알아 줄 것이니 포기하지 맙시다!”라며 위로한 일도 있다. 국민의 대변인이고 일꾼인 국회 의원은 일류대를 나오고 장관이나 판‧검사, 도지사 등 고관을 지내고 돈 많은 사장 출신보다, 일반 생활인으로 애국심 있고 소신 있는 사람이 더 자격 있다는 것을,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원 의원과 권위와 체면만 내세우는 그 판‧검사 출신 국회 의원의 태도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5. 제15대 국회에 바란다

 

글쓴이는 남다르게 뜨거운 한글 사랑, 나라 사랑 정신으로 의정 활동을 하는 원 의원을 보면서 원 의원을 국회로 보내 준 원주 시민들께 여러 번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한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을 원주 시민들이 국회로 보내 준 것은 한글과 나라를 위해 다행스런 일이고 참으로 잘한 일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 준규 전 의장에게 몇 번이나 우리들이 만나 줄 것을 요청하고도 못 만났는데, 이 만섭 의장께선 기꺼이 만나 주시고 국민을 대신해 수고한다며 격려까지 하시며 우리 건의를 들어 주셔서 매우 고마웠다. 나는 그분을 만나 뵙고 훌륭한 지도자 자질이 있는 분이라 느꼈다. 요즘은 4년 전에 비해 회의 소집 공고문도 한글로 쓰고 ‘주차 금지’ 등 안내 표지도 한글로 돼 있는 등 많이 좋아졌는데 이 만섭 전 의장님과 원 의원님 덕인 줄 안다. 홍 사덕 의원께서 입법 시 ‘생수’란 말 대신 ‘먹는 샘물’이란 말을 쓰게 하신 것도 한글 사랑 실천의 본보기였다.

 

그리고 우리들을 만나 주고 격려한 김 상현, 이 해찬, 박 계동 의원님 등도 고마웠다. 부디 제15대 국회는 한글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이 국회 의원으로 많이 뽑혀서, 또다시 여러 선생님들이 애쓰지 않아도 국회 의원 스스로 ‘한글 전용법’의 ‘다만’ 조항을 없애고 경기도 의회처럼 한글 이름패 쓰기로 결의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또한, 한글 반포 550돌 및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한글 신문인《독립 신문》창간 100돌이 되는 뜻깊은 올해, 한글(훈민정음)이 국보 제1호로 지정되고 모든 신문이 한글 가로쓰기로 발행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

출처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글쓴이 : 이대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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