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한글날, 주시경 선생과 한글학회를 흔드는 무리들
지금은 한글을 어떻게 잘 이용해서 좋은 나라 만들까 고민할 때이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대로
한글과 한글날, 주시경 선생과 한글학회를 흔드는 무리들
요즘 세종대왕을 존경한다면서 한글과 한글학회를 헐뜯고 짓밟는 이들이 설치고 있다. 누구나 마음대로 제 뜻을 한글로 적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제멋대로 지껄여서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들은 마치 제가 가장 훌륭한 학자요 전문가인 거처럼 큰소리친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처음 만든 글자가 아니고 고조선 때부터 있던 글자를 본 따서 만들었다느니, 글자 이름을 ‘한글’이 아니고 ‘정음’이라고 해야 한다느니, 한글날의 날짜가 틀렸다느니 하는 이들이 그런 자들이다. 저만의 생각이 진리인 것처럼 말해서 한글과 세종대왕을 더럽히고 있다.
설사 문제가 조금 있다고 해도 지금은 그런 논쟁으로 국력을 허비할 때가 아니고 어떻게 한글을 잘 이용해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한글을 빛낼 것인가 힘쓸 때다.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본질을 벗어난 주장인데 정부가 검토하기로 했다고 크게 보도하는 언론까지 있으니 답답하다. 언론과 정부는 무엇이 참인지 똑바로 알고 잘 처신하기 바란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고 처음 태어났을 때 이름은 ‘훈민정음’이다. 그리고 언문이라고도 했고, 여자들이 쓴다고 ‘암클’이라고도 하다가 대한제국 때 고종이 처음으로 ‘국문’이라고 했는데 나라 글자란 뜻이다. 그 전에는 중국이 두려워 우리나라 글자라고도 못했고, 우리 글자에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다. 마침내 1907년 고종 때에 정부 안에 우리 글자를 다듬고 널리 쓰게 하려고 ‘국문연구소’도 만들었고, 1908년에 민간 학술단체인 국어연구학회(지금 한글학회)를 조직하고 우리 말글을 가르치고 널리 알렸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우리 글자를 다듬고 널리 쓰게 해 우리 글자 힘으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기 전에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일본말이 국어(나라 말)가 되고 일본 글자가 나라 글자가 되니 우리 글자를 국문(나라글자)이라고 할 수 없고 우리말을 국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주시경은 우리 글자를 살려서 우리말과 우리겨레를 살리겠다는 뜻을 버리지 않고 1911년 국어연구학회를 "배달말글몯음(朝鮮言文會)"으로 바꾸고, "국어강습소"는 "조선어강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나라도 없어졌으니 우리말과 글자에 떳떳한 이름을 지어 부르자고 우리말은 ‘한말’, 우리 글자는 ‘한글’이라고 새로 짓고, ‘배달말글몯음’도 ‘한글모’로, ‘조선어강습소’도 ‘한글배곧’이라고 바꾸었다.
그리고 주시경은 한글책 보따리를 들고 배재학당, 보성학교 들 10여 개 학교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한글을 가르쳤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라도 우리 글자를 더 가르쳐서 나라를 되찾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주시경을 ‘주보따리’라는 별명까지 붙여 불렀다. 그러나 1914년 주시경이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한글모’ 활동이 뜸하다가 1921년 ‘조선어연구회’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재개했고, 다시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꾼 뒤에 ‘한글날’을 제정하고 ‘한글’이란 연구지도 내고 표준말과 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우리말 사전도 만들었다. 모두 우리 말글을 다듬어 우리 말글로 교육을 해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뜻에서 한 일이다.
그런데 그 때 주시경과 조선어학회가 하는 이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나왔다. 바로 박승빈이 친일 세력인 윤치호 무리들의 도움을 받아 ‘조선어학연구회’란 모임을 만들고 우리 글자 이름도 ‘한글’이 아닌 ‘정음’이라고 하면서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맞춤법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 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들 민족 언론과 문필가들이 많은 토론 끝에 박승빈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서 조선어학회가 승리했다. 그런데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람들을 감옥소에 가두고 학회 활동을 못하게 했는데 이상하게 똑 같은 우리 말글단체를 만들고 활동한 박승빈 일파는 잡아가지 않았고, 오히려 박승빈은 황국신민이 되자고 친일 활동에 나선다. 여기서 나는 박승빈이 일본의 앞잡이로서 한글과 조선어학회를 죽이려고 했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박승빈을 내세우며 우리 글자 이름을 ’한글‘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고 ’정음‘이라고 해야 하며, 한글맞춤법도 잘못되었다는 이들이 주시경과 한글학회를 헐뜯고 있다. 거기다가 한글날 날짜도 잘못되었다고 떠들으니 행안부는 검토하겠단다. 정부가 한글학회를 짓밟던 친일분자 박승빈과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이들의 편을 드는 꼴이다. 한글이라는 이름과 한글날과 한글학회가 없었다면 지금도 조선시대처럼 한문을 쓰거나 일제 강점기처럼 한자혼용을 할 것이다. 한글과 한글학회 덕으로 오늘날 세계에서 문맹자가 가장 적은 나라가 되어 국민 수준이 높아졌고, 그 바탕에서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빨리 경제와 민주주의도 발전했다. 그런데 한글과 한글을 지킨 분들을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헐뜯고 있으니 답답하다.
한글날 날짜 문제도 그렇다. 일본 지배를 받던 1926년 한글날을 처음 정했을 때도 이름은 ‘가갸날’이었고 날짜도 음력 9월 29일로 정했다가 1928년에 이름을 ‘한글날’로 바꾸었고, 날짜도 1933년부터 양력으로 바꿔서 10월 29일로 행사를 했다.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 되어 그 근거로 광복 뒤 많은 토론 끝에 10월 9일로 정했고 지난 70년 동안 한글날이 되면 한글을 빛내겠다고 다짐하고 온 국민이 힘써서 오늘날 한글나라를 만들고 있는데 발목을 잡고 있다.
‘한글’이란 이름에 대해 한마디 더한다. 지금 우리는 한글이라고 부르고 북에서 ‘조선글’이라고 한다고 ‘정음’이란 이름으로 통일하자는 이들이 있다. 그것도 잘못이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남북이 갈라지기 전인 일본 강점기 때에도 함께 쓰던 명칭이고, 한글날도 마찬가지 일제 때에 정하고 온 겨레가 함께 기린 우리 글자 기념일이다. 그런데 광복 뒤 북은 그 글자 이름을 ‘조선글’이라고 하고, 글자기념일은 한글 창제 일을 기준으로 1월 15일로 정하고 “조선글의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중국 연변 동포들은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승격한 9월 3일의 하루 전날인 9월 2일을 “조선족글자자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지금 남북과 중국 동포가 모두 글자 이름도 다르고 기념일도 다르지만 남북이 이렇게 갈라지기 전에 온 겨레가 모두 우리 글자를 ‘한글’이라고 부르며 글자의 날을 ‘한글날’이라고 했으니 남북 모두 우리 글자를 ‘한글’이라고 부르고, 기념일은 ‘한글날’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글자 이름과 기념일을 하나로 통일하려면 나라가 통일이 되었을 때 다시 논의하고 합의해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글자 이름과 기념일이 틀렸다고 국력을 낭비하는 것은 우리 말글 문제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서 잘못된 일이다.
다시 외친다. “글자 이름과 기념일을 가지고 국력을 낭비하지 말자. 오늘날 우리는 한글을 우리말을 적고 읽는 데만 씀으로서 한글이 가진 엄청나게 큰 능력과 쓸모를 30%밖에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셈틀과학시대를 맞이해 세계 으뜸 소리글자요 과학글자인 한글을 잘 이용해 임성인식기계통번역기와 세계 으뜸 인공지능기계를 개발하고, 한글로 훌륭한 논문과 문학 작품을 써서 한글 이용률을 100%로 늘리자. 그래서 세계 으뜸 겨레, 나라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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