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영어 조기교육 나라 망친다

한글빛 2006. 1. 19. 01:01
[주장] 영어 조기교육은 공교육을 죽인다
텍스트만보기   김영조(sol119) 기자   
지난해 12월 8일 국회에서는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15년 만에 일반기념일 시대를 접고 드디어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글날 국경일을 염원했던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정부는 한글날이 국경일 된 상황과는 전혀 다른, 한글을 죽일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부가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영어 조기교육을 1학년으로 시범 확대할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지방교육청 당 1개교씩 이뤄질 시범 교육을 통해 성과를 분석하고, 이 결과를 반영해 2008년까지 초등 영어교육 확대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또 이를 위해 시범학교에 원어민 영어교사를 배치하는 한편 교재도 현재 활용중인 교재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 추천 또는 인정도서로 활용할 방침이다. 여기에 더하여 경제특구, 국제자유도시에서는 2008년부터 영어 몰입교육을 시범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인적자원 개발, 활용의 국제화'를 이유로 내세웠으며, 나라 밖 영어연수에 큰돈이 지출되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교육단체와 한글단체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교육과 시민 사회'는 '초등영어교육 확대는 재고해야 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육과 시민 사회 윤지희 공동대표는 말한다.

"초등학교 1학년 시기는 학습보다는 정서와 흥미 위주로 하여 적응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영어라는 쉽지 않은 과목을 정식 교육과정에 넣음으로써 오히려 아이들에게 압박감을 주어 학습 장애가 일어날 것을 걱정한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에 정규 과목이 된다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아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고, 이에 따른 또 다른 영어 열풍과 광범위한 사교육의 확산이 일어날 것이기에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또 영어 교육의 전문가인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의 박거용 교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10년 전 정부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작했는데 교재 등을 10달 만에 급조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르칠 교사도 없는 상태에서 졸속으로 정책 시행을 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이런 일이 또다시 생기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때여서 이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영어권은 어족이 같아서 괜찮지만 한국, 중국, 일본은 같지 않기 때문에 안 된다. 또 영어를 일찍 공부하고, 많이 하는 것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두른다는 것은 큰 위험을 내포한다. 충분한 논의가 오간 다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 분류사전'의 펴낸이 국어문화운동연합 남영신 회장은 교육부에 날카로운 질문을 하나 던진다.

"교육부 관리들은 영어 공부를 수학 공부처럼 학교에서 가르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영어는 언어이고, 언어는 공부해서 되기보다는 말과 생활을 통해서 천천히 습득된다. 영어 공부는 언어 습득의 한 방법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말을 통해서 영어를 습득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가르치기만 하면 무얼 하나? 쓸 곳이 없고, 말할 기회가 없는데. 그렇다고 가정에서 부모들과 영어로 말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 어려움을 심각하게 보고 우리 실정에 가장 맞는 교육 방안을 찾는 것이 교육부의 사명일 것인데 우리 교육부 관료들은 도대체 우리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단순히 일찍 가르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책을 세워 집행하려 한다."

이 말에 대한 교육부의 대답이 궁금해진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이대로 사무총장은 수십 년 한글의 발전을 위해 몸 바쳐 온 사람이다. 최근 한글날 국경일 승격에 일등공신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그는 최선을 다해 왔다. 그는 말한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영어 조기교육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보완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를 꾀하는 교육부 관료들에게 화가 날뿐이다. 3학년을 1학년까지 낮춘다고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사교육비가 증가할 뿐이다.

어려서 영어 몇 마디 했다고 영어를 잘할 것이란 생각은 어리석다.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스스로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영어 교육의 확대는 교육 관료들의 업적일 수가 없음은 물론 교육과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늘 교육부는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그 목적에 맞는 것인가를 초등학교 영어 교육 확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묻는다. 교육부는 '교육과 시민 사회' 윤지희 공동대표의 말처럼 초등학교 1학년이 아니라 유아기부터 영어교육의 미친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있는가도 묻고 있다.

대부분의 반대론자는 상명대 박거용 교수의 말처럼 자기 정체성이 세워지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우리 말글을 제대로 가르치기 전에 영어를 가르쳐 노랑머리를 만들 셈인지가 궁금하다고 한다. 틀림없이 그렇게 공부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문화사대주의자가 될 것으로 본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또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세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인 영어교육의 활성화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초등학교 4년과 중등 6년의 영어교육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따라서 이수 학년의 확대가 아니라 주당 수업시간의 확대를 통한 집중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어서 이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외국어인 영어를 가르치기 이전에 자국어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한 다음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영어만이 아닌 중국어 등 다른 언어에 대한 선택권도 줄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예부터 교육은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먼 앞날까지 미리 내다보고 세우는 크고 중요한 계획이란 뜻이다. 그런 나라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을 졸속으로 세우는 교육부를 국민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교육 계획이란 한국의 미래임이 분명할 터인데 충분히 논의를 거친 다음 천천히 하기를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주문하고 있음이다. 영어 조기교육은 공교육을 죽인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2006-01-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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