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오리 스승님, 당신의 이 겨레를 밝히는 별입니다.

한글빛 2008. 10. 22. 21:25

당신은 이 겨레와 이 땅의 큰 별이었습니다
[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오리 전택부 스승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이대로
존경하는 스승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을 중국 땅에서 듣고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한글날에 서울에 가서 병원에 계신 스승님을 찾아뵙고 제 책“우리말글 독립운동 발자취”를 드렸을 때 글이 안 보이신다며 아드님께 추천사를 다시 읽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한글학회 100주년 축하 행사 때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가 쓴 책의 추천사를 써가지고 오셨는데 뵙지도 못하고 가셔서 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병원 응급실로 가셨다고 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 두 달 전에 스승님을 찾아갔을 때 내가 쓴“우리말글 독립운동 발자취”출간에 감동하셨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내게 격려 인사를 하시려고 일어나셨다.     © 이대로
존경하는 스승님, 저는 너무나 큰 사랑 스승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스승님을 모시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려고 국회로 정부로 쫓아다닐 때 많은 감동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스승께서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 달라고 청와대로 대통령을 만나러 가셨을 때 만나지 못하니 그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셔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가 다행히 깨어나셨으나 그 뒤에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은 병원에서 깨어나셔서 ‘각설이 타령’이란 글을 쓰셨는데 그 글에서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국경일로 만들어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저는 그에 감동해서 더 발 벗고 나서서 스승님을 모시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습니다. 두 달 전 제가 처음으로 책을 내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며 댁으로 찾아가서 추천사를 부탁드렸을 때 “ 살아온 모습이나 역사관이 나와 어쩌면 그리 똑같으냐. 내 젊은 날 사상계 주간으로 있을 때 외솔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서 고맙다고 큰 절을 했는데 오늘 내가 너에게 큰 절을 하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네가 다 했구나.”시며 불편한 몸을 일으켜서 진짜 절을 하시려고 해서 저와 제 아내가 황급하게 붙잡고 앉으시게 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스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대로가 있기까지 부인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을 안 해도 안다고 하시며 제 아내에게 “고맙습니다. 애썼습니다.”라고 인사까지 해주셨습니다. 기독교 일에, 또 다른 사회단체 일에 보이지 않게 구준 일을 다 하셨지만 성과와 칭찬은 다른 사람 몫이었고 알아주지 않았다고 하시며, 이대로가 꼭 당신과 닮았다고 하시면서 “내가 다 아니 끝까지 이대로 가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그 때 마침 한글날 제정운동을 함께 한 신기남 전 의원이 제게 전화를 해서 바꿔드렸더니 반갑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서 이렇게 먼저 가시면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달라고 청와대에 가셨다가 쓸어 지신 뒤에 스승님의 병을 간호하시다가 병이 나신 사모님이 어쩌십니까!
 
저는 그동안 많은 이들로부터 멸시와 비웃음을 받을 때도 스승님이 계셔서 든든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힘들어도 스승님만 믿고 뛰었고 칭찬해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떠나시면 저는 누굴 믿고, 누구의 가르침을 받는 단 말입니까!  스승님!  스승님! 저는 지금 먼 중국 땅에서 스승님이 이 땅을 떠나시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이 죄스러움을 어찌 한단 말입니까! 이 세상 아무리 잘난 사람이 있어도 저는 스승님이 가장 훌륭한 어른이고 애국자입니다. 스승님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이 겨레와 나라와 한글을 사랑하고 걱정하셨습니다. 
 
▲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 앉으시라고 하고 스승님의 손을 꼭 잡고 죽는 날까지 스승님의 마음을 알고 이어가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내 아내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 이대로

보름 전 경기도 마석 병원으로 제 아내와 함께 제 책을 가지고 가서 보여드렸을 때 “아! 참 좋다!  부인과 함께 와서 참 기쁘다!”고 하시며 불편한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때 제 글을 읽지 못하신다며 아드님에게 읽어달라고 하시면서도 제 아내를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아드님은 제게 “요즘 이대로 선생님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아버님과 선생님이 많이 닮은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선생님 손을 꼭 잡고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스승님께서 못하신 일을 제가 다 하겠습니다. 건강하게만 계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스승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 더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듭니다. 저는 그 때 스승님께서 손자 손녀와 조용한 시간을 갖기 바라는 마음에서 황급하게 서둘러 자리를 뜬 게 가슴이 아픕니다. 
 
▲ 집안에 오리 인형이 진열되어 있기에 사진을 찍으니“며느리가 나를 보라고 사다 논 거예요.”라고 자랑을 하셨다. 전택부 선생님 아호가‘오리’다. 이제 이 오리는 누가 볼 것인가?     © 이대로

스승님께서는 한글학회 100돌이 되는 해에 제 책이 나와서 기쁘다고 하시더니, 올해에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일생을 이 겨레와 나라와 한글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는데 나라로부터 변변한 상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다행히 살아 게실 때 그 덕을 알아주었으면 했는데 마침 올해 세종문화상을 받게 되었지만 그 상장도 보지 못하고 가시니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스승님, 이제 편안하게 가소서! 살아있는 제가 스승님의 뜻과 가르침을 이어가겠습니다. 저도 죽는 날까지 스승님처럼 바른 말을 하고 된 글을 쓰다가 스승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중국 절강성 소흥에서 제자 이대로 올림.
관련기사
'오리' 전택부 서울 YMCA 명예총무는 누구?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2008/10/22 [12:20]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