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이윤옥 교수가 쓴 책 - 사쿠라 훈민정음

한글빛 2010. 11. 19. 17:35

신성한 훈민정음에 사쿠라를 달지 마라!
이윤옥 교수, 우리말속의 일본말찌꺼기 걸러낸 ≪사쿠라훈민정음≫ 펴내
 
김영조
▲ <사쿠라훈민정음> 책 표지     © 인물과사상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서정쇄신은 ‘여러 방면에서 정치 폐단을 고쳐 새롭게 함’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이 말은 여러 곳에서 더욱 날개 돋친 듯 쓰인다. 정확한 어휘로 기사를 작성하고 내보내야 하는 신문 같은 매체에서도 서정쇄신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서정쇄신이 우리 겨레를 개조시키려 한 일제강점기 미나미 지로 총독의 ‘조선통치 5대 목표’였음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위 글은 ≪사쿠라훈민정음≫ 책에서 인용한 글귀다. 올해는 나라를 빼앗겼던 국치 100돌이고 나라를 되찾은 지 벌써 65년이 된 해인데 아직도 우리의 일본말찌꺼기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고대 야마토시절 자신들에게 고급문화를 가르쳐줬던 은혜의 나라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통치하려고 일제가 썼던 <서정쇄신>을 우리는 자존심도 버린 채 쓰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인들이 더욱 많이 쓴다. 

이런 잘못을 통렬히 꾸짖는 책이 나와 화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에서 오랫동안 일본어 교육에 전념하던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이 “인물과사상사(대표 강준우)”를 통해 낸 ≪사쿠라훈민정음≫이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또 “참배”도 좋지 않은 일본말이라며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참배를 일본국어대사전 《다이지센》에 찾아보면 “さん‐ぱい【参拝】 社寺, 特に神社にお参りしておがむこと. 「伊勢神宮に―する」 →삼빠이: 신사나 절 등에 참배하는 것. 이세신궁에 참배하다.”라고 풀이했다. 곧 이 참배라는 말은 전쟁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들에게도 하는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국립현충원에 갈 때도 쓰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런 말들은 문화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지장, 자개장, 비단장, 화각장, 삿자리장, 주칠장, 죽장(竹欌), 용목장, 화초장, 화류장, 먹감나무장 등 이름을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종류의 장롱이 있었고 용도에 따라서도 버선장, 반닫이, 머릿장, 의걸이장, 문갑, 경상, 궤안, 뒤주, 고비 등이 있어 집 안에는 온갖 가구들로 넘쳐났다. 그렇게 발달했던 장롱문화를 가졌던 나라가 언제부턴가 한국 가구들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일본 장 이름 <단스>를 들여다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그렇게 배알도 없는 것일까?
    
▲ 일제강점기 "한글이 목숨"이라고 쓴 외솔 최현배 선생     © (재)외솔회,김연갑
그렇게 지적해주는 말들은 끝이 없다. “혜존”도 바로 그런 말의 하나다. “책을 받은 사람이 겉표지에 문집 이름을 적고 속표지에는 누구에게서 언제 받았는지를 적은 다음 책을 준 사람 이름 끝에다 “은혜롭게 주시기에 잘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쓴 것이 혜존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쓰던 것이 일본식을 따라 “내 책을 잘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둔갑한 것에 대해 이는 우리 겨레가 쓰던 본래 의미와는 동떨어진 행위라고 꼬집는다.

그밖에 높은 곳을 뜻하는 “마루”를 밀어내고 일본말 “정상”을 가져다 쓰며, 우리말 “마을”을 밀어내고 일본에서 천민집단이 사는 마을을 뜻하는 “부락”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물론, 일본말로 간질ㆍ발작을 뜻하는 뗑깡을 자기 자식에게 쉽게 쓰는 부모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또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을 평가하던 “수우미양가”가 일본 사무라이들의 목 베기에서 유래하였음을 추적하는 글도 신선하다. 

쓰나미(지진해일), 타쿠하이(택배), 부츠류(물류), 재테크(재산불리기) 같은 말을 지금도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 쓰는 것은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언어의 확장이 아니라 또 다른 문화 식민지 역사를 예고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문제는 나라 말글생활의 바탕이 되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일본사전을 그대로 베꼈거나 말밑(어원) 설명이 어정쩡한 데 있으며 일본말찌꺼기 또한 그 어원이 일본어임을 분명히 밝혀준다면 우리말로 바꿔 쓰려고 노력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쉽다는 일침도 가한다. 
        
▲ 일본 교토 단바망간기념관의 함바(위), 서서 밥을 먹던 당시 노동자들을 재현해 놓은 모습     © 김영조
 그동안 일본말찌꺼기를 다루는 책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전혀 다르다. 기존 책에서 두루뭉술 넘어갔던 말밑 부분을 명쾌하게 풀어낸 점이 두드러진다. 또 지은이는 이 작업을 통해 일본에서 온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주장하기보다 일본말찌꺼기를 순화해야 하는 필연성을 제시해 읽는 이가 스스로 일본말찌꺼기를 쓰지 않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책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또 작은 부분이지만 지은이가 독자들이 읽어내기 쉽도록 배려한 것도 눈에 띄는데, 한 꼭지를 시작할 때 맛깔스러운 시나 적절한 인용문을 제시한 것은 물론 내용 중 필요한 것들은 《일본국어사전》이나 《조선왕조실록》등 자료를 충분히 제시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다만, 아쉬운 옥에 티는 자료로 인용된 사진들의 몇몇 출처가 제시되지 않은 점이다. 

한국이 고대 일본에 엄청난 선진문화를 전해준 겨레라는 것은 일본 사서들이 앞다투어 말해주는 바와 같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한자에서 모양을 본뜬 가나문자에 머문 글자생활이지만 우린 세계 최고의 글자라고 평가받는 한글을 쓰는 겨레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일본사람들이 만들어 쓰는 낱말들을 민족적 자존심을 해쳐가면서까지 그대로 들여다 쓰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던가! 이것은 언어문화의 또 다른 식민문화이다. 
 
2009년 11월에는 광복 64년 만에 겨우 친일 반역자들의 죄상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펴냄)이 나왔고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뜻 깊은 국치 100년, 광복 65년을 맞아 여러 행사와 기념식이 있었지만 정작 ‘식민언어청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쿠라훈민정음> 의 지적처럼 경인년 호랑이해가 저물기 전 올해가 ‘일본말찌꺼기 청산의 원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책을 통해 가져 본다. 하나 더 이제 신성한 훈민정음에 사쿠라를 다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간절히 비손한다. 

 
 
우리말인 양 행세하는 일본말찌꺼기 두고 볼 수 없었다
[대담] ≪사쿠라훈민정음≫ 지은이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


▲ ≪사쿠라훈민정음≫ 지은이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     © 김영조
- 사실 이런 일이야 국립국어원이나 국어학자, 한글단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지은이는 일본어 전공자이다. 그런데 굳이 일본말찌꺼기에 관심을 두고 이런 책을 낸 까닭은 무엇인가?

“전쟁이 나면 군인만 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어사랑에 국어 전공이냐 일본어 전공이냐를 따진다는 것은 우습다. 다만, 국어 속에 우리말처럼 숨어있는 ‘일본말’을 밝혀낼 사람은 일본어 전공자가 국어 공부만 한 사람보다 유리하며 어쩌면 적임자 일 수 있다. 

일본 문화를 공부하면서 우리 문화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문화와 말글살이에

관심을 두고 일본 문화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잘못된 일본말찌꺼기가 우리말 속에 무분별하게 들어와 토박이말을 밀어내고 마치 우리말인양 행세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를 제대로 알려주는 기관이나 사람이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방치 할 수 없어 안 되겠다 싶어 나서게 된 것이다.” 

- 일본말찌꺼기는 우리말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말들을 당장 없애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한다. ‘노견’이라는 말을 ‘갓길’로 바꿔 부르기 시작할 때 상당한 거부감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그런데 일본말찌꺼기인 줄 모르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러나 지금 ‘갓길’을 다시 ‘노견’으로 쓰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본말찌꺼기들을 얼마든지 바꿔 쓸 아름다운 우리 토박이말이 있음에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포기다. 토박이말로 바꾸면 잠깐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금세 쉽고 편한 우리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게 우리말의 매력이다. 토박이말을 살려 쓰느냐 남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가져다 쓰느냐는 어디까지나 민족주체성이 문제이다. 이는 일본말 뿐 아니라 갈라쇼(뒤풀이 공연), 멀티탭(모둠꽂이), 슬로우시티(참살이지역) 등 끝없이 밀려오는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 여기에 말밑(어원)을 밝힌 것들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인가?

“제아무리 순금이라 해도 100%는 없다. 항상 99.99로 나가지 않는가? 그러나 문헌을 찾아볼 수 있는 한 다 뒤져 보았다. 심지어 <수우미양가> 같은 말은 국립국어원, 교육과학기술부는 물론 일본 국립국어연구소, 문부과학성까지 누리편지ㆍ전화를 활용하여 자료를 얻어 확인했다. 다만, 모호한 국어를 시원하게 풀어줘야 할 대한민국 최고의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이 어물쩍 넘어가는 것을 혼자 찾아 정리하느라 머리털이 한 움큼 빠졌다. 등대 없는 뱃길을 항해하는 심정이다. 누구든 근거가 틀리다 생각하면 정확한 자료를 제시해주어 함께 고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이 책에 들어 있는 일본말찌꺼기 올림말만 해도 70여 개나 되는데 앞으로 더 나올 말이 있는가?

“이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말 속에서 일본말’을 찾는 게 아니라 ‘일본말 속에서 우리말’을 찾는 게 좋을 정도로 그 수는 700을 넘고 7000을 넘어 만 단위로 넘어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앞으로 이 책은 그러한 말들을 전부 찾아낼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본말이면서 어떤 것은 일본말임을 밝히고 어떤 것은 그냥 슬쩍 지나가는 식의 현행 사전 정리가 시급하다고 본다. ‘우리말의 70%가 한자’라는 통계치만 들이댈 일이 아니라 우리말 속에 원래 쓰던 한자말과 식민시대에 들어온 일본 한자를 구분하고 이를 낱낱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양돈(돼지 키우기)’과 ‘옥토(기름진 땅)’ 같은 말은 조선시대에도 쓰이던 말인데도 ‘일본말’로 분류하고 있는 등 원래 쓰던 한자말과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구분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을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해야 할 중대하고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 책에 있지 않은 일본말찌꺼기 가운데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요즈음 2권 작업을 하면서 날마다 놀라고 있다. 흔히 사이좋은 부부를 가리켜 ‘잉꼬부부’라고 쓰고 있는데 여기서 ‘잉꼬’란 일본말로 ‘앵무새’를 가리킨다. 반면 ‘원앙금침’이란 말처럼 우리는 예부터 ‘원앙’을 부부금실을 상징하는 새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엉뚱하게도 앵무(잉꼬)새가 부부금실의 상징처럼 통한다. 이와 같은 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 일본말찌꺼기를 찾아내 말밑을 밝히는 일 말고도 우리말에 대해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는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우리 한글을 빌려다 자기네 말을 적고 있는데 견주어 요즘 한국은 대도시고 중소도시를 막론하고 앞다투어 영어 간판 달기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어서自’처럼 우리말을 짓밟는 광고 문구가 넘쳐난다.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워 나는 가방 속에 작은 카메라를 넣고 다니며 현장을 찍어 우리의 자화상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찍어둔 사진이 400여 장이다. 이것들을 널리 알리고 싶다.”

- 지은이는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데 이곳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일본 속에 숨겨진 수많은 사연의 ‘한반도 이야기’를 잘 모른다. 이를 통감하고 시대별로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차근차근히 짚어 보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 일본이 빼돌린 문화재 일부가 돌아오고 있지만, 어떤 문화재가 얼마만큼 빼돌려졌는지 누가 가져가서 호사를 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다. 더욱이 고대로 올라가면 더 심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코 일본이 해주질 않는다. 우리가 우리시각으로 정리해야 할 문제이다. 이웃끼리 서로에 대한 깊이 있는 ‘앎’은 ‘어울림’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작업이다. 그것들을 차근차근 짚어 나가는 작업을 연구소 과제로 삼고 진행 중이다.”

- 친일청산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에서 오랜 활동을 한 것으로 한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민족문제연구소는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 1991년에 설립된 순수 민간단체이다.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설립된 연구소에서 2009년에 펴낸 ≪친일인명사전≫은 인적 친일 청산의 신호탄으로 본다. 친일청산 문제는 우리말 속에 고질병처럼 남아 있는 ‘식민언어청산’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며 나는 전국 회원들의 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미력이나마 돕고 있다.”

- 앞으로 해보고 싶은 또 다른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없다. 연구소 일과 일본말찌꺼기 작업으로도 벅차다. 생전에 다할까 모르겠다.”

기자와의 대담 중 지은이는 일본말찌꺼기나 잘못된 국어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졌다. “겨레말 하나 갈고 닦지 못하는 것을 두고 어떻게 높은 문화민족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어를 전공한 사람인데도 한국 문화에 깊은 조예가 있는 지은이와 대담을 하는 동안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매우 당찬 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대담하는 내내 이런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우리 속에 있는 일본말찌꺼기는 벌써 청산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기사입력: 2010/11/16 [14:06]  최종편집: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