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한자에 얼빠진 노인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한글빛 2012. 8. 6. 16:48

글자와 말도 구별 못하는 한자 숭배자들
어문정책정상화가 조선시대 말글살이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이대로
▲ 7월 31일 무더운 날씨에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수백 명 노인들이 한자 살리겠다고 모였다.     © 사람일보

2012년 8월 1일자 동아일보에 “한자도 한글처럼 관습헌법상 국어”라는 제목으로 어제 출범한 어문정책정상화추진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된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말한 기사가 있었다. 한글은 우리나라 글자일 뿐 우리 국어가 아니다. 한글은 한국어뿐 아니라 일본어와 영어나 찌아찌아어도 적을 수 있는 한 글자일 뿐이다. 한글이 한국어가 아니듯이 한자도 말할 것 없이 한국어가 아니다. 글자와 말은 전혀 다르다. 말 속에 글자는 들어갈 수 있으나 글자를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국무총리나 대학 교수를 지낸 이들이 이런 무식한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신문은 이날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에는 이한동 전 국무총리(사진)가 추대됐으며, 공동대표는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김훈 한국어문회 이사장, 박천서 한국어문회 고문, 심재기 서울대 명예교수, 안병훈 서재필기념회 이사장,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 회장, 이용태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이평우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수석대표, 정기호 인하대 명예교수, 정우상 한자교육국민운동연합 공동대표, 조부영 전 국회 부의장,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 최근덕 성균관 관장,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고 보도했다.

이 분들 모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정치인, 학자, 기업인, 단체 대표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분들이 글자와 말도 구분할 줄 모르고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다니 이 나라가 걱정이 되고 부끄럽다. 한심하고 답답하다. 그리고 또 ‘관습헌법’이란 말은 무슨 말인가? 지나치게 한자를 섬기다보니 제 멋대로 입맛에 맞는 말을 만들어 거기에 꿰맞추고 있다. 더욱이 이 분들은 20여 년 전에도 이런 주장을 내세우며 헌법소원을 냈으나 각하된 일이 있는데 또 그러고 있으니 고칠 수 없는 한자 숭배병자로 보인다.

이들은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자를 써왔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는 한자와 한글을 조화롭게 사용해왔다”고 말하고 있으나 헛소리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우리 글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빌려 썼던 것이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 조선시대에도 한자와 중국 문화에 길든 한문숭배자들과 중국 때문에 우리 글자인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사용하지 못했고 갈고 닦지 못했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 때에는 한자와 일본 글자인 ‘가나’를 섞어 쓰는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들어서 어쩔 수 없이 한자를 섞어서 사용했으나 오늘날 한글만으로 얼마든지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훌륭한 글자로 갈고 닦았다.

이한동 회장은 "국어사전에서 한자어가 거의 70%에 달하며, 그 가운데 약 25%나 되는 동음이의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면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며 "국어는 새의 양 날개처럼 한글과 한자인 국자로 함께 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도 억지소리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한문나라 중국문화 그늘에서 살았고, 일제 식민지로 살 때 일본식 한자말에 길들어서 한자말이 많지만 실제로 쓰는 한자말은 50%도 안 된다. 그리고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려고 노력하면 30%로 줄어든다. 그런 노력은 안하고 갓 쓰고 짚신을 신던 시대 말글살이로 되돌아가는 것이 어문정책 정상화라니 제 정신인지 답답하다.

그리고 한글과 한자를 새의 두 날개처럼 함께 써야 좋다고 했는데 한글이란 날개는 크고 능력이 세지만 한자란 날개는 조그맣고 능력이 약해서 함께 쓰면 새가 날아가지 못한다. 당치도 않은 비유를 하고 있다. 귀로 들어서 알아들을 한자말을 한글로 쓰고 그렇지 않은 일본식 한자말은 토박이말로 바꾸고 한글로만 쓰면 얼마든지 한글만으로 말글살이가 가능하다. 그게 말글살이 정상화다.

이 세상에서 두 글자를 섞어서 쓰는 나라는 일본뿐이고, 일찍이 미국 유명한 과학자 제어드 다이아몬드는 “두 글자를 섞어서 쓰는 일본이 가장 불편하고 미개한 말글살이를 하는 나라다. 가장 과학체계를 갖춘 한글만 쓰면 가장 편리한 말글살이가 된다”라고 유명한 학술지 디스커버지에 써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또한 한글은 한자나 다른 글자와 섞어서 쓰면 그 훌륭함과 가치가 떨어진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중국도 버리려고 애쓰는 한자를 배우고 쓰는 데 힘과 돈과 시간을 낭비한단 말인가. 그건 어문생활을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글살이를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때로 되돌리는 일로서 더 꼬이게 만드는 일이다.

‘짚신’이나 ‘가죽신’이 ‘발’이 아니듯이 ‘글자’는 ‘말’이 아니다. ‘짚신’이나 ‘가죽신’은 발을 담는 그릇이고 도구이다. 따라서 한자도 한글도 물론 국어가 아니다. 말을 담는 그릇이고 도구일 뿐이다. 짚신은 한자와 같고 가죽신(구두)은 한글과 같다, 제 발에 잘 맞는 신을 신듯이 오늘날 우리 말글살이에 편리한 한글을 쓰는 것이 바른 말글살이다. 제발 국무총리와 대학 교수까지 지냈다는 분들이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의식과 언어습관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래서 국민들 불편하게 만들어 한글 발전 역사에 죄인으로 남지 말기 바란다.
 
조선시대에 짚신을 신고, 갓 쓰고 다녔다고 지금도 그래야 한단 말인가? 일제 강점기 때는 그들 식대로 한자를 혼용했다고 지금도 그러자는 말인가? 정신을 차리자. 지금은 세계 으뜸 글자로 우리 자주문화를 꽃피워서 더 힘센 나라,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을 때이다.
 
 
<이대로 논설위원(한말글문화협회 대표)>

 

기사입력: 2012/08/03 [15:50]  최종편집: ⓒ 사람일보